올해의 땡땡땡
2018년은 나에게 굉장히 복잡한 한 해였다. 책은 생각보다 많이 읽지 못했고, 영화도 생각보다 많이 보지 못했다. 공연은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맛있는 건 진짜 많이 먹으러 다녔고, 요리도 예전보다 조금 더 익숙해졌다. 올해 내 맘대로 최고를 이것저것 뽑아본다.
올 해는 예년보다 더 많은 새로운 음식점을 다녔다. 해외에서 돌아다닐 때도 음식점을 전보다 훨씬 신경써서 골랐다. 그 중 올 해 초 다녀온 일본 여행은 어글리 딜리셔스에 나오는 음식점들을 가보기 위한 투어였다 (퍼블리 컨텐츠들에서도 도움을 많이 얻었다). 그 중 Seirinkan이 나한테는 베스트였다. 가끔 Seirinkan에서 먹었던 피자가 생각난다. 곧 다시 가볼 것 같다. 아쉽게도 후보에서 떨어진 메뉴는 바오바의 양고기 바오, 파스토의 트러플 파스타, 긴자의 아부라 소바. 나머지 셋도 모두 추천한다 (궁서체로 진지하게).
올 초에 보았던 올 더 머니와 더 포스트도 좋았고, 대작으로는 아이맥스로 본 보헤미안 랩소디와 미션 임파서블도 좋았다. 그러나, 가장 큰 감동은 서치 (Searching)였다. 그리고 감동 포인트는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일상에서 쓰고 있는 IT기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타이핑, 클릭, 사운드였다.
이야기는 딸 마고가 부재중 전화 3통화를 남기고 사라진 후, 아빠 데이빗이 딸의 노트북, 이메일, 지도, SNS계정 등등을 이용해서 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아빠가 딸에게 메세지를 타이핑을 하는 커서의 움직임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전달하는 감독의 센스에 감동했고, 배우의 연기보다 IT기기의 화면과 소리로 감정이 더 극적으로 느껴졌다.
좋았던 장면을 뽑으면 두 씬이 있는데, 하나는 imessage에서 타이핑을 하다가 멈추고, 지우고, 다시 쓰고를 서로 했던 아빠와 딸의 메시지. 머뭇거리는 마음이 fully 느껴지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나머지 하나는 아빠의 스크린세이버에서 딸에게 전화가 오는 것이 보이는 장면이다. 별거 아닌 mac의 기본 스크린 세이버 화면인데 영화에서 큰 화면으로 보니 굉장히 음산하게 느껴졌다. 참신함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참신함을 통해서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이 인상적.
올해 예전보다 처음 공연에서 만난 가수들이 많았다. 10cm, 헤이즈, 거미, 볼빨간 사춘기 등등을 처음 공연에서 보았다. 가본 공연 모두 좋았고, 기회가 되면 다시 갈 것 같다 (올해도 갔던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도 아마도). 그 중에 가장 좋았던 공연은 10cm와 헤이즈의 공연이었다. 사실 별 기대없이 갔었는데, 십센치, 헤이즈 둘 다 특이한 목소리가 앨범보다 훨씬 더 두드러지더라. 10cm는 확실히 노래를 똑똑하게 매력적으로 부른다는 느낌이었는데, 공연에서 그게 더 두드러져서 좋았다.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에서도 10cm공연이 손꼽을 정도로 좋았다. 헤이즈도 랩과 노래 모두 잘해서 인상적이었다 (팬도 많아서 인상적;;).
최근 5권짜리인 밀레니엄 시리즈를 다 읽었다. 2권과 3권은 새벽 4-5시까지 볼 정도로 푹빠져서 보았다 (요즘 시간이 많다). 1권, 2권 모두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데, 엄청 두꺼운 미미여사의 소설에 비해서 스토리가 긴 것은 아니다.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작가는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이야기의 촘촘한 해상도를 보여준다. 등장 인물이 꽤나 많은데, 주요 등장 인물들이 그 시간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줄줄이 돌아가면서 다 소개를 한다 (가끔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시간대별 엑셀 시트를 보고 있는 느낌). 이 뿐만 아니라 중간에 나오는 인물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감정을 왜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과거사를 시시콜콜하게 다 적었다. 예를 들면 여주인공인 리스베트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저지른 과거의 어떤 잘못이 있는지 그리고 그걸 리스베트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등을 한 두페이지 정도를 사용해서 적었다. 꽤나 큰 이야기를 촘촘하고 다양하게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읽는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나오는 캐릭터들도 다 매력적인데, 하나 아쉬운 점은 남주인공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과하게 시마과장스럽게 나온다(상상은 여러분의 몫). 시작해서 속도가 붙으면 진짜 정신없이 볼 수 있으니, 주말을 이용하시길~
작년 양키스는 예상하지 못했던 리빌딩 대성공으로 좋은 한해를 보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수비는 엉망이지만, 타격은 훌륭한 안두하가 나타났고, 글레이버 토레스는 성적도 성적이지만 승리의 아이콘으로 자리해서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사실 양키스 관련한 기사도 재미있는 기사가 많았다. 무수히 많은 스타들과 감독들이 팀을 거쳐가고, 야구의 흐름이 계속 바뀌는 시대에서 계속 양키스를 운영하고 있는 캐시먼 관련 기사는 양키스 기사 중 가장 재미있던 기사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았던 기사는 신기하게도 댄 코놀리의 트레이드 관련 기사였다. MLB는 한국 프로야구보다 훨씬 다양한 트레이드가 일어나서 재미있다. 미래를 위해서 정말 팀의 심장처럼 보이는 선수를 팔아버리기도 하고, 우승을 하기 위한 팀들이 8월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반년 렌탈을 위해서 꽤나 좋은 유망주를 댓가로 지급하는 것도 재미있다. 이런 것을 보고 있으면, MLB의 트레이드는 실제 '야구 선수'라는 것보다 승리를 위한 '숫자'로 계속 바뀌어서 평가되고 그 숫자만 보인다.
댄 코놀리가 뉴스에 적은 올해 볼티모어 올리온스는 정말 최악의 팀이었다. 50승을 못한 유일한 팀이고(시즌 최다승팀 보스턴은 108승), 팜랭킹도 높지 않다. 유망주를 키울 것인지, 대권에 도전할 것인지 확실히 정하지 못하고 몇 년을 보내던 볼티모어는 올해 또 다양한 선수들을 팔았다. 우승권에서 멀어진 팀들이 주력 선수를 팔아치우고 탱킹을 하는 모습은 이제 어색하지 않다. 작년 플로리다 말린스에 이어서 많은 팀들이 탱킹 자세로 돌아서서 선수를 팔고 있고, 다양한 트레이드와 더 다양한 트레이드 루머들이 생겨나고 있다. 댄 코놀리는 기사에서 볼티모어에서 우에하라 고지, 잭 브리튼 같이 팀에서 오래 뛴 선수들이 팀을 떠날 때의 이야기를 적었다. 당연히 사업적 결정이며, 그들이 프로이기 때문에 원래 팀에서도, 새로 갈 팀에서도 잘 적응하고 자기 실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아마 팬들도 그 선수들을 적절한 시기에 잘 팔았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가 된 선수들의 감정이 존재한다.
"스콥은 슬퍼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자세로 트레이드를 받아들이는 듯 했다. 하지만 가우스먼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티셔츠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가우스먼은 눈물을 글썽이며, "기분이 묘하네요. 가장 힘든 건 동료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기사에 따르면 트레이드 상황에서 누구는 울기도 하고, 누구는 아쉬움에 감독을 잡고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요즘 팬들은 많은 미디어를 통해서 다양한 소식을 접하면서 덕아웃이나 탈의실에서 어느 선수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트레이드 시점이 되면, 그 선수의 실력 뿐만 아니라 work ethic까지 논란이 된다. 팀을 옮겨다닐 수 있지만, 그 사람들과 또 항상 잘 지내야 하는 것, 그리고 자기 실력을 발휘하여 팀의 성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꽤 많은 회사를 옮겨다니면서 새 회사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올해 트레이드된 많은 선수들이 새 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길 바란다.
너무 길어서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