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를 맞추며 지지지직-
학교가 끝나고 학원까지 다녀오면
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라디오부터 켰다.
밤 10시부터 12시까지는
KBS COOL FM의 슈퍼주니어 키스 더 라디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MBC FM의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를 듣기 위해서였다.
내 방에는 분홍색 작은 라디오 하나가 있었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면
안테나를 끝까지 올려 창문 쪽으로 향하게 두고,
이어폰을 연결해 양쪽 귀에 꽂은 뒤
베개에 누웠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나면
기대에 찬 마음으로 광고를 들으며
오프닝을 기다렸다.
공무원 합격은 에듀윌,
서울사이버대학교에 다니고 나의 성공시대 시작했다.
지금도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그 광고들은 귀에 익숙했다.
광고라는 짧은 인내의 시간이 지나면
라디오 오프닝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Life couldn’t get better.
Life couldn’t get better, better, better.”
“안녕하세요.
슈퍼주니어의 키스 더 라디오, 이특, 은혁입니다.”
매일 조금씩 다른 인삿말로
라디오는 시작됐고,
곧이어 첫 곡이 흘러나왔다.
노래가 끝나면
DJ는 늘 같은 멘트를 덧붙였다.
“네, 0월 0일 0요일
오늘의 첫 곡은 가수 ○○의 ○○이었습니다.”
그렇게 라디오는
코너와 코너 사이마다 음악을 들려줬다.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나중에 다운받아서 MP3에 넣어야지’
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가수 이름만 기억나고
노래 제목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컴퓨터를 켜 라디오 홈페이지 선곡표를 찾아봤다.
가끔 보이는 라디오를 하는 날이면
KBS 콩이나 MBC 미니를 켜
좋아하는 얼굴을 보며 듣기도 했다.
내가 라디오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사연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 말고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에게 괜히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기도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연애 고민 사연에는 괜히 두근거렸고,
진로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더 집중해서 듣게 됐다.
청취자와 전화 연결을 하는 코너도 좋았다.
그 시절의 라디오는
지금의 토크 프로그램을
소리로만 듣는 느낌이기도 했다.
퀴즈를 맞히고
TV나 냉장고 같은 경품을 받아 가는 사람을 들으면
괜히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사연을 보내는 용기를 내지는 못했고,
문자나 콩으로
조용히 응원 메시지만 남겼다.
슈퍼주니어 키스 더 라디오가
차분한 재미였다면,
심심타파는 훨씬 유쾌했다.
웃긴 사람이 둘이나 있으니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너무 재미있어서
새벽 두 시까지 듣다 잠든 날도 많았다.
지금 키가 못 큰 게
그때 라디오를 너무 많이 들어서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사실은 유전이겠지만.
어느 날 문득 궁금해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도 어릴 때 라디오 많이 들었어?”
“응, 많이 들었지.”
“어떤 거?”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의 프로그램 이름은 그대로 두고
DJ만 바뀌며 이어진다는 게 신기했다.
오랜만에 다시 들어도
‘아, 별밤 아직도 하네’
하며 추억을 불러오는 방식이 좋다고 느꼈다.
그 시절 라디오는
나에게 웃음이었고,
음악이었고,
위로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주파수를 맞춰가며 라디오를 듣기보다는
유튜브 영상으로 짧게 훑어보는 쪽에 가까워졌지만,
노력을 해야만 만날 수 있었던 라디오는
지금도 다른 정겨움을 남긴다.
가끔
누군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 밤,
오랜만에 라디오를 켜본다.
그 주파수 안에서
나도 잠시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