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나만의 시간을 아무도 막을 수 없으셈-
나는 음악을 정말 좋아했다.
매일 걸어 다니던 등하굣길,
학교가 끝나고 부랴부랴 향하던 학원 가는 길,
학원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돌아오던 밤길까지.
그 모든 길에는 늘 나와 함께하던 녀석이 있었다.
바로 삼성 YEPP MP3.
작은 MP3 안에는 벅스뮤직, 멜론뮤직 차트 100의 노래들이 꽉꽉 담겨 있었다.
씨야, SG워너비, 브라운아이드걸스.
그 시절의 음악은 지금 다시 들어도 여전히 내 심장을 뛰게 만든다.
지금처럼 스트리밍이 당연한 시대와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노래를 하나하나 다운받고,
친구에게서 노래를 선물 받으며
그렇게 음악으로 우정이 싹트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수업 7교시를 마치고
이어폰 귀에 꽂은 채 학원으로 향했다.
저녁 8시쯤 학원이 끝나면 학원가 앞에는 학원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어떤 아이들은 떡볶이집이나 토스트 가게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 풍경이 참 익숙하고도 특별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해서 학원 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
집까지 거리가 꽤 되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음악과 나만의 시간을 아무도 막을 수 없으셈-’
그런 기분이 더 컸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낙엽이 가득 쌓인 길을 걸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귓속의 음악이 함께 흘렀다.
노이즈 캔슬링 같은 건 없던 시절이라
이어폰 너머로 바깥 소리가 종종 섞여 들어왔다.
그날도 그렇게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하다가
무언가를 사기 위해 잠시 슈퍼인지 빵집인지에 들렀던 것 같다.
물건을 고르는 데 집중하느라
나는 잠시 이어폰을 빼고 계산을 마쳤고,
그대로 다시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하면 씻기 전에 가방부터 정리하는 게 나의 습관이었다.
그날도 학교 책과 학원 책을 꺼내고,
교복 주머니에서 늘 그렇듯 MP3를 꺼내려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조그마한 교복 마이 주머니,
치마 주머니를 몇 번이고 더듬어봤지만
손에 닿는 건 공기뿐이었다.
그제야 이어폰 줄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놀란 나는 곧바로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나만의 철칙이 있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찾을 수 있다.’
이미 해가 져 어둑해진 길에서
낙엽을 손으로 들춰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닥을 살폈다.
하지만 끝내,
나의 애착템 MP3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날이 나와 그 녀석의 마지막이었다.
이후로 가끔 그 녀석의 사진을 보며
그 시절을 곱씹곤 한다.
비록 지금은 MP3가 잊힌 시대에 살며
스트리밍에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가끔은
그때의 음악과 함께 그 녀석을 떠올린다.
아마,
내가 음악을 좋아하게 된 시작에는
그 MP3가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