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 7. 결혼반지
0 결혼반지, 그냥 아무거나 사면 되나요?
결혼반지, 결혼 과정을 거치며 겪어야 하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결혼식을 마친 뒤 만나는 분들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대화거리에요. 어쩌면 평생 구매할 반지 중 가장 비싼 반지일지도요. 결혼반지에 대해 제가 들은 이야기는 이래요.
일. 예산은 얼마인가요?
이. 어디서 맞출 건가요?
명품 브랜드,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 금은방 혹은 금 전문 샵
삼. 어떤 디자인을 선호하세요?
고전적인 디자인, 독특하고 희귀한 디자인, 화려한 디자인 등
사. 배우자와 디자인이 같아야 할까요?
결혼반지는 한 쌍이니까 같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각자에게 어울리는 디자인과 선호도에 따라 동일한 포인트만 살리고 달라도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오. 양가 부모님의 액세서리는 어떤가요?
양가 부모님의 액세서리를 따로 살 수도, 계약에 따라 패키지로 함께 구매할 수도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저희는 결혼박람회에서 만난 곳 중 한 곳에서 모든 과정을 진행했어요. 시간은 금이고, 결혼 초심자인 저희가 다 챙기지 못하는 부분까지 챙기고 상세히 상담해준 곳이라 운이 좋았습니다.
1 결혼반지 샵을 결정한 이유
저희는 결혼반지를 생략하려고 했어요.
남편과 맞춘 커플링이 있는데 결혼반지를 따로 맞출 이유를 못 찾았지요. 하지만 남편은 저를 사랑하는 만큼, 본인이 생각하기에 좋은 게 있다면 하나라도 더 제게 해주고 싶어했어요. 게다가 결혼박람회는 세상의 산해진미를 다 모아놓은 곳이었습니다. 예물을 만드는 업체들도 세 곳이나 있었죠. 저희가 그중 찾아간 곳은 플래너가 ‘유니크한 디자인이 많은 곳’이라고 말했던 (구)클림트 였어요.
결혼박람회에 나와 상담하시는 실장님들은 상담만 전문으로 하시는 걸까요? 사장님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전 직장인인 걸까요? 다들 근무는 안 하신다는데 상담은 꼼꼼하게 하시고, 서비스와 흥정의 폭이 컸습니다. 그런 실장님과 대화하면서 저희 남편은 가계약 서류에 사인을 완료했어요. 옆에서 본 저의 눈에는 인어공주와 마녀 우르술라의 계약 같기도 했지요. 어느 쪽이 우르술라인지는 침묵하겠습니다.
많은 걸 얻어내 만족한 채로 저희는 박람회장 문을 닫고 나왔어요. 그 후 꽤 시간이 지나고, 저희 예상 보다 결혼이 후루룩 진행되고 있던 그때, (구)클림트 사장님이 남편에게 연락을 남기셨어요. 어쨌든 양가 어머님 액세서리를 생각하던 차, 결혼반지 여부는 가서 정하기로 하고 함께 샵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2 그 반지를 껴보지 말았어야지
절대 호구 잡히지 않겠다는 의심, 불안을 마음에 품은 채 호랭이 가죽을 뒤집어 쓰고 웃고 있던 저희. 그런 저희 앞에 담당 실장님이 활짝 웃으며 들어오셨어요. 입장부터 남편에 대한 칭찬이 쏟아져 내렸죠. 부드러운 무드로 일단 결혼반지를 껴보기 시작했어요. 일단 껴보는 전략이 그리도 무서울 줄이야. 처음에 껴본 다섯가지 디자인은 그저 그랬어요. 제 마음도 바람 한 점 안 부는 호수처럼 잔잔했습니다. 그러나 조용한 공격이 이어졌어요.
첫 번째 디자인 중 가장 반응이 좋은 친구를 뽑아 비슷한 라인업으로 10개, 그 후 10개, 그 후 5개, 또 10개, 함께 비교할 가드링들이 입장했어요. 서로 껴보면서 눈으로만 볼 때는 재미있었고 서로의 취향을 맞춰보기도 좋았습니다. 본게임은 3개 미만으로 추렸을 때에요. 남편이 좋은 디자인, 제가 좋은 디자인을 꼽습니다. 그 후 반지 낀 손을 제 눈이 아니라, 거울에 비춰보고, 그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최종 판단을 내리는 거에요.
나의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이라고,
가장 비싼 반지가 잘 어울리지 뭐에요. 갑자기 그 반지를 끼고 새까만 톰포드 정장을 입은 채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 마시고 있지 뭐에요. 검은 원피스를 길게 입고 남편과 손 잡은 채 하객분들께 인사를 하고 있지 뭐에요. 가드링을 올렸더니 갑자기 무드가 장미밭으로 바뀌지 뭐에요!
그래서, 그렇게 됐습니다.
저희는 그 반지를 벗어나기 위해 다른 반지를 계속 착용해봤지만 이미 눈에 들어오고, 피부에 닿고, 마음에 차버렸더군요. 그렇게 계약서를 작성했어요.
3 반지를 손에 쥐기까지 청담동 한바퀴
완성된 반지를 찾으러 가는 날, 현금으로 결제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둘 다 그걸 전날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죠. 건물에 차를 주차하기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ATM기 탐정 출동이었어요. 가장 가깝다는 ATM기를 찾아갔더니 정해진 카드만 사용할 수 있어 실패, 다른 ATM기는 갑자기 카드 비밀번호가 틀리대서 재설정하느라 실패, 또 한 곳에서 뽑을 수 있는 한도에 걸려서 실패, 이렇게 빙빙 돌다보니 청담동 한 바퀴를 돌았답니다. 한여름이었어요. 모터스튜디오의 ATM기, 세븐일레븐의 ATM기, 성형외과 건물 사이에 위치한 ATM기, 지하철 상가에 위치한 ATM기를 돌고 돌며 커피 한 잔 마시지 못한 채 기진맥진해졌어요. 땀 범벅으로 들어간 클림트에서 사장님이 주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마치 퇴근 후 생맥 한 잔 같은 느낌이었죠. 드디어 끝입니다.
4 2026년의 결혼반지는요
서랍에서 잘 자고 있습니다.
드물지만 포멀하게 입을 때 혹은 중요한 날만 끼고 있어요. 남편은 한 손에는 결혼반지, 다른 손에는 커플링을 끼다가 제가 잘 안 끼니 이제 둘 다 커플링만 차고 살아요. 왜일까를 생각해보면 매일 끼기에는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더러워지고, 잃어버릴까 싶은 불편함. 예뻐서 골랐는데 마음이 괴로우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일이 생겼어요. 동생이 저희와 같은 클림트에서 결혼반지를 맞췄더라구요. 가격까지는 아니었지만 살짝 비교해볼 수 있었어요. 혼주 악세서리, 포장 박스 같이 부자재도 비슷했지만 클림트를 간 키워드가 비슷했어요. 심플한 디자인, 독특한 디자인. 저도 그걸로 갔고 동생도 그랬다고 해요. 그러니 아마 비슷한 키워드를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도 해당될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