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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과 프로세스의 힘

#미션이있는선생님 #미션이없는선생님

by 승화

미션과 프로세스의 힘


“스승의 날이니까 돈을 모아야 한대”

무척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어요.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짝꿍이 갑자기 꺼낸 말이었죠. 스승의 날이니까 돈을 모아서 선생님께 드리자는 제안을 같은 반 분들께 들었다고요. 이제는 대부분의 센터에서 금지하고 있어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저도 분명 들어봤던 말이었죠. 짝꿍이 한 말은 까르륵 웃어 넘겼지만 최근 저는 운동 선생님께 자발적으로 선물을 보냈답니다. 보자기로 포장한 선물을 말이에요. 심지어 비싼 헬스 퍼스널 트레이닝(PT) 선생님께 돈을 양껏 쓴 뒤였죠. 감사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선물이었어요.


헬스를 처음 한 건 아니었어요. 이미 수차례 실패했습니다.

기부천사로 전직도 해봤고, PT를 받으며 선생님께 칭찬도 들어봤고, 재미없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면서 차일피일 수업을 미룬 적도 있었어요. 헬스를 싫어하면서 주변을 떠도는 유령 같은 존재였죠. 마지막 수업은 정말 너무 재미가 없어서 다시는 헬스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짝꿍에게 투덜거렸고요. 그런 제가 다시 헬스 PT를 시작하는 걸 넘어 몇 번이고 연장해 1년이나 받았어요. 게다가 이제 짝꿍과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있죠. 근육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고, 더 크고 질 좋은 근육을 갖고 싶어요. 어떤 부분이 이런 차이를 만든 걸까요?


이번에 받았던 PT 수업은 이전과 다르게 체계가 있었어요.

첫 수업 전에 간단한 동작을 취하면서 그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 제 현재 상태를 진단했어요. 운동하기 전에 항상 오늘 수업의 목표를 공유하고 제가 저를 믿지 않을 때, 선생님이 저를 믿고 한계까지 도전했어요. 한 동작을 배울 때마다 이 동작을 왜,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동작, 어떤 부분, 일상 속 어떤 증상과 연결되어 있는지 설명했어요. 최종적으로 수업이 끝난 뒤에는 제가 직접 오늘 무엇을 했고, 왜 했으며, 수업 후 어떤 운동을 더 하고 갈 것인지 발화하고 카톡방에 메모를 남겼어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현재 위치 확인

2 오늘의 목표 합의

3 교육자가 수행자를 믿고 한계까지 도전하도록 유도

4 교육 내용의 WHY, HOW를 설명하고 일상 속 증상, 동작과 연결하여 설명

5 수행자가 오늘 교육받은 내용을 요약함으로써 기억하고 소화하도록 정리

6 기록을 남겨 이후 교육 내용을 반복하도록 유도


그래도 헬스 PT를 1년이나 하다니 정말 바보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저는 성취감을 종종 얻으며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높여 왔어요. 수영과 요가를 하면서 가슴을 든다는 감각, 어깨를 더 멀리 뻗는다는 감각 등 신체를 분절해서 느끼는 감각은 제대로 느끼지 못했고, 실행하지 못했는데 운동을 하다보니 그게 되네요? 하나의 동작을 몇 번 반복하다보면 머리를 비울수록 잘 만들어지는 동작도 있었고, 한 번이라도 들면 그 중량은 든 거고, 그걸 기점으로 그 후에도 계속 도전을 이어나가는 거예요. 그냥 꾸준히 한다는 감각을 배웠어요. 선생님은 항상 일관적으로 이야기 했거든요.


저는 최근에 거주지를 옮기면서 선생님과 이별했어요. 마지막 수업 때 우리는 제가 계속 욕심 냈던 데드리프트 중량 한계를 넘었답니다. 105라는 한계를 간신히 넘었어요. 으쌰! 마지막 순간 우리 대화는 이랬어요. 선생님은 다른 헬스장에서 모르는 기구나 기억 안 나는 동작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고, 저는 선생님의 미션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이 헬스장은 게시판에 선생님들의 프로필과 사진을 모두 공개해 두었어요. 그리고 그 프로필 상단에는 각자 직접 설정한 미션이 큰 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저는 그 미션 덕에 제가 헬스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미션은 “하기 싫고 귀찮은 운동 보다 재밌고 매일매일 하고 싶은 운동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선물을 보내며 제가 한 인사도 그랬어요. 선생님의 미션에 대해 누가 물어보면, 선생님의 미션 덕에, 미션 그대로 변화한 사람이 있다고 선생님 포트폴리오에 적어 달라고 이야기했어요. 정말 다시는 시작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헬스를 시작하고, 지속하고 있는 사람, 더 하고 싶고 한계를 높이고 싶어진 사람이 저라고요.


선생님 덕에 미션을 설정하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때 생겨나는 힘에 대해서도 체감했어요. 선생님은 스스로의 미션을 헬스를 수행자의 일상으로 녹아들도록 하고자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없더라도, 다른 지역을 가더라도 헬스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본인 만의 교육 체계를 설계했죠. 그렇다면 저는 어떤가요?


저는 글쓰기를 제 일상에 녹이고 싶고, 글쓰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싶어요. 다만, 제가 무언가를 생성하려는 이유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제가 더 많은 걸 나누면서, 저 개인의 영향력 보다는 서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모임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요. 그렇다면 제게 필요한 체계는 따로 있을텐데 이제 더 고민해볼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미션과,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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