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 이야기(2025.04.21.)
개는 정말 무시무시한 생물입니다.
개는 털이 빠집니다. 끝도 없이 빠져요.
자기 영역, 가족을 지키기 위해 큰 소리로 짖고, 또 짖습니다.
낯선 것에 쉽게 긴장해서 겁 먹고, 덤비고, 달리고 또 달립니다.
게다가 흥분하면 온몸으로 표현해 인간 가족은 몸도 마음도 진이 빠지곤 해요.
그리고 인간에게 편안한 환경이 개에게는 위험하기도 해 집안 환경도 바꿔주어야 한답니다.
개는 아파도, 슬퍼도 말을 안 해요. 그러니 계속 관찰을 해야 하고 인간은 소통이 미숙한 존재라 헛발질도 많이 하죠.
저희 집 강아지 볼트는 진도 믹스에요.
겉모습만 보면 털이 안 빠질 것 같은데 매일매일 놀라울 정도로 털이 날린답니다. 빗으로 30분 정도를 잡고 숨겨진 죽은 털을 정리한 뒤 돌아서면 털이 날리죠. 문득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면 새하얀 볼트의 속털들이 모이며 하얀색을 드러내요. 인간의 시야에 잘 잡히지 않는 흰색이라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살아갑니다.
진도 믹스는 실내 배변을 하지 않아요. 정확히는 한계 이상까지 참습니다.
이전에 함께 했던 강아지 가족들은 모두 실내 배변을 했어요. 물론 산책을 나가면 더 신나서 신선한 배변을 했지만 비나 눈이 너무 심하게 오는 날, 폭염이 심한 날은 실내에서 무사히 볼일을 봤어요. 심지어 한 마리는 패드에, 한 마리는 화장실에 싸고 간식을 뇸뇸 먹었기에 볼트도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심지어 임시보호처에서는 패드에 소변을 봤거든요! 하지만 우리 강아지는 처음에 침대에 소변을 한 번 본 뒤로, 혼나지 않았는데도, 인간이 칭찬 없이 조용히 침대를 치우자 이상한 기운을 느꼈나봅니다. 이제 소변 조차 절대 절대 절대 나가서 싸고 있어요.
이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짧은 산책을 나가요. 소변, 운이 좋다면 대변까지 보고요. 그후에 오후나 밤에 또 나간답니다. 이 정도면 됐다, 싶나요? 만약 강아지에게 급똥 신호가 온다면 당신은 나가야 합니다. 강아지가 끙끙 거리면서 괴로워하면 반드시 나가야해요. 그럴 때 배변봉투만으로는 부족하니 꼭 물과 휴지를 챙겨가세요, 동지여.
분리불안도 염두에 두어야 해요.
저희는 가족이 된 날부터 분리불안을 고려해 만지고 싶으면 10번 중 1번만, 뽀뽀하고 싶으면 10번 중 1번만 하도록 서로를 감시했답니다. 그래도 혹시 볼트가 전선이라도 씹을까, 누가 들어와 볼트를 다치게 할까 싶어 홈캠을 사서 설치한 바로 다음 날이었어요. 마침 둘 다 집을 비워야 했던 날, 볼트가 20분 정도 하울링을 하는 거예요. 저희는 마음으로 오열하면서 분리불안 공부를 시작했어요. 백색소음을 틀어두고, 외출 시에만 등장하는 노즈워크 장난감 시리즈를 뿌려놓고 나가봤더니, 볼트는 인간이 나가도 노즈워크에만 코를 박고 있었답니다. 이때 저희는 노즈워크 장난감만 서너개는 샀답니다.
하지만 외부 소음에 대한 짖음이 시작되었어요.
입주한 세대수가 적었던 저희 층, 고로 입주가 계속 이어집니다. 입주청소, 가전설치, 포장이사, 친구들의 방문,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 택배 배송의 와글와글하고 우당탕 소음이 심한 날이었어요. 둘 다 집을 비워야만 했던 하필 바로 그날. 홈캠 알림에 ‘소리’가 뜨자마자 둘 다 확인했죠. 볼트가 짖고 있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졸이며 지켜봤고, 결국 우리는 다시 외부소음에 대한 둔감화 교육을 공부하기 시작했답니다. 강아지가 자기 소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걸 줄이는 방법도 있다지만 그걸 선택하고 싶지 않았어요. 개는 개라는 말에도 동의하지만, 이 집에 같이 사는 가족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깍두기지만요.
경험해본 적 없는 시끄럽고, 거대한 것, 빠르게 움직이는 모든 것을 겁내니까 목줄을 꽉 쥐어야 해요.
볼트는 청소기도, 분리수거 비닐도, 티브이도 모든 것을 다 겁내요.
산책을 하다 만나는 쓰레기봉투, 주차석, 전신주 등 거의 세상 대부분의 것을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줄을 꽉 쥐고 산책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해요. 강아지가 천천히 다가가 냄새를 맡을 시간을 주어야 해요. 그리고 간식도 필수입니다. 먹성 좋은 강아지라 간식으로 진정 훈련을 할 수 있거든요. 길을 가다가 갑자기 주인이 멈춰서더니 강아지가 앉을 때까지 기다린다면, 저희일지도 모르겠어요.
간식을 가지고 다니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훈련을 하기 위해 간식을 꽤 많이 먹어야 해서 저칼로리를 사야 하고, 알러지 재료를 피해야 하고, 사료에 많이 들어가는 닭고기는 피합니다. 간식이 오면 알이 아주 작지 않은 이상 그걸 또 잘라야 해요. 그 주머니를 떨어뜨린다면 우리 개는 통제해도 다른 집 개가 먹거나 들고 도망갈 수 있어요. 그 개에게 위험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간식을 내민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통하진 않아요. 특히 다른 개를 만나거나, 예상치 못한 자극에 놀랐을 땐 간식도 무용지물이죠. 인간은 끝 없는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강아지가 조금 더 어른이라면, 5살이나 혹은 그 이상이라면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 더 짧을 수 있겠지요.
맞아요, 그리고 집.
본가 강아지는 디스크 진단을 받았어요. 저희는 인간의 디스크를 떠올리고 마음으로 엉엉 우는데 의사는 차분히 말했어요. 집안에서 지내는 강아지들 중 디스크가 아닌 강아지가 오히려 적다고요. 강아지들은 바닥에서 사족보행을 하는 생물이지만 집에서는 점프하고, 미끄러지고, 떨어집니다. 그리고 인간은 강아지를 안아들곤 해요. 지금 집은 볼트가 오기 전에 블럭 패드를 깔아두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부엌이나 침대 밑에서 급하게 움직이다 미끄러지곤 해서 매트를 추가로 깔 예정이에요. 그렇게 되면, 인간은 청소기를 돌릴 때도 걸레질을 할 때도 빨레를 할 때도 해야 하는 일이 조금 더 늘어난답니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아파도, 슬퍼도 말을 안 해요.
그저 눈을 힘 없이 뜨거나, 조용히 숨어서 참거나, 인간의 손이 닿으면 으르렁 거리거나 하는 거에요. 설채현 님 유튜브 영상 중에 그런 말이 있었어요. 보호자들은 반려견이 딱 하나만 말할 수 있다면 아프다고 말하기를 바란다고요. 볼트가 집에 온지 며칠 안 됐을 때 그 먹성 좋은, 우리 식탐 강아지가 갑자기 밥을 안 먹었어요. 그날따라 이상하게 한쪽 눈을 반복해서 비비고, 한 다리에는 경련이 왔죠. 그래서 저희는 지켜보다 결국 못 참고 병원에 갔어요.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고 오히려 강아지를 더 강하게 대해야 한다는 조언을 잔뜩 들었답니다. 강아지는 강하게 대하면 내가 강한 강아지구나! 생각하고, 아구 약하고 작고 불쌍한 강아지로 대하면 맞아 나는 약하니까 다들 조심하라굿! 이라고 생각한다고요. 조언을 잘 듣고 저희는, 얼마 전에 강아지가 의자를 씹길래 스트레스 받나봐, 하면서 울망울망한 눈으로 커피츄를 주문했어요.
가장 큰 경제적인 준비는 어떻고요.
동물정보등록, 주기적으로 맞아야 하는 주사와 먹어야 하는 예방 약, 1년~2년 주기의 건강검진
산책을 위한 배변봉투, 산책을 위한 리드줄과 하네스나 목줄 같은 도구들, 물컵
산책을 다녀온 뒤 청결을 위한 티슈, 씻어야만 할 때를 위한 샤워도구
이동을 위한 이동장, 집에서 생활하기 위한 집, 장난감
만약 강아지가 아프다면 치료비에 대한 준비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랑이 커질수록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도 계속 커진답니다.
아마 여기서 놓친 부분도 많을 거예요. 막상 같이 살기 시작하면 더 많은 요소들 앞에 숨이 차겠죠.
우리 애는 산책할 때 엄청 당길 수 있고, 다른 개와 싸울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괜한 욕을 먹을 수도 있어요.
집에서 무언가를 부수거나, 매일 같이 난장판을 만들어 훈련사를 만나야만 할 수도 있죠.
그래도 저희는 개와 살고 있답니다.
해가 좋으면 볼트와 멀리 산책하기 좋고, 반려견 운동장에 나가기 좋은 날이에요.
비가 오면 볼트가 우비를 입어 좋고, 산책하다 멍하니 앉아 있기 좋은 날이에요.
집에 오면 18시간을 잔다는 개가 쿨쿨 자면서 잠꼬대 하는 모습도 보고 강아지 꼬순내를 맡을 수 있어 좋은 날입니다.
인간들이 뽀시락 거리며 무언가 하고 있을 때 관심을 가지면 귀엽고,
관심이 없으면 분리불안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어 좋아요.
결혼 전에 결혼 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저희가 가장 먼저 이야기한 내용이었어요.
개와 함께 하는 삶.
불편하고, 어렵지만 인간은 늘 그런 곳에서 성장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