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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을 추구하는 삶

일상 이야기(2025.04.13)

by 승화

루틴을 추구하는 삶

2025.04.13.



결혼팰리스 시즌2가 끝났습니다. 최종 커플이 된 이들도 있었고, 관계의 끝을 마주한 이들도 있었죠.

일부 출연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스스로의 자격 부족, 준비 부족 때문이었다고요. 혹은 너무 간절해서 너무 크게 생각해서 잘 안됐다고요. 저는 정작 프로그램을 볼 때는 그치, 하고 넘겼어요. 그런데 문득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가족들 사이로 눕다가 그 장면이 생각 났어요. 얼마 전에 나눈 다른 이야기가 연결됐어요. 결혼식 이후의 제 삶과 루틴에 대한 대화였어요.


3월 한 달은 그전과 전혀 다르게 흘렀습니다.

흘렀다는 단어가 정확합니다. 집안일 사이에서 저는 매일 파도의 포말처럼 떠다니다가, 때로는 침몰하곤 했어요. 그리고 4월이 왔습니다. 조금 더 사람답게,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기 시작하며 새로운 일상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한다고 느꼈어요. 그 순간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그동안 침몰해 있었구나. 아니, 어쩌면 지금도 아직 그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고요. 이런 이야기를 꺼내자 집을 방문한 지인들과의 대화는 일상의 버거움으로 뻗어나갔습니다.


그러다 나온 키워드가 루틴이었어요. CEO들과 업적을 이룬 연구자들의 삶에 존재하는 다양한 루틴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시간을 귀중하게 사용하려면, 환경을 조정해야 하고요. 환경을 조정하려면 루틴이라는 기제 혹은 장치가 필요하다고요. 아주 작은 반복 훈련입니다. 강아지 한 마리에게 새로운 훈련 하나를 시키려면 2년은 필요하다고 해요. 인간의 습관이라면 얼마나 더 독하겠어요? 게다가 인간은 불안을 타고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도 그랬습니다.


“그 루틴을 일반인이 어떻게 지켜”,

그쵸. 업무 시간에 내가 내 시간을 조정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출퇴근 시간도 그렇고, 이동 시간도 그렇고,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모든 환경에 대해 그렇죠. 그 이야기가 나온 당시 저는 그 말을 이해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새벽에 결혼팰리스 마지막 장면과 겹쳐 떠올리니, 다르게 이해합니다. 상대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오히려 내 삶에도 루틴을 만들고 싶어, 그래서 더 큰 작업을 하고 싶어, 그런데 루틴을 만들기 위해 바꿔야 하는 게 너무 크고 많아서 지금 나는 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아니었을까요.


최근 같이 공부했던 몇 명이 모여 목표 추적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각자의 노션에 기록한 목표 달성 현황과 지난 시간 동안 얻은 인사이트를 나눕니다. 저는 지난 한 달 동안 사실상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한 동료들은 목표의 120%를 달성했더라구요. 그 차이는 단순했습니다. 그는 원하는 이미지가 있었고, 일단 움직였어요. 생각하고, 배우고, 가진 걸 공개하고, 질문을 받고, 기회를 만들고, 또 나누며 구체화해나가는 프로세스를 꾸준히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불안을 타고난 존재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불안은 손을 움직이는 순간,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합니다.

머릿속에 그리는 기대나 예측은 결국 상상일 뿐, 현실은 움직일 때 열립니다. 루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각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내가 생각하는 기대치, 예상 결과와 미래는 결과도 현실도 아니기에, 실행을 해봐야만 열리는 세계가 존재합니다. 루틴도 마찬가지에요. 거대한 루틴을 계획하고, 그대로 바로 실행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일단 상자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거겠죠.


저는 3월부터 아주 사소한 루틴을 시작했습니다. 이불을 개고, 옷을 걸어요. 이 작은 행동들을 ‘내가 내 삶을 다루고 있다’는 신호로 만들고 있어요. 지금 시도 중인 또 다른 루틴은 두 가지입니다. 하루 2시간 결혼기 글쓰기, 오전 중 집안일 끝내기.


그래도 매일 무너집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보는 직장인들, 가계부를 확인하며 실제로 숫자와 부딪힐 때,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채용공고를 볼 때, 글을 쓰면서 이게 세상에 무슨 영향이 있나 싶고 그냥 환경오염이라고 느껴질 때, 가족이나 친척들과 만나서 어떤 대화를 할 지 떠올리면서요.


그냥 계속 하려 합니다. 제 삶을 제가 직접 붙잡아 걸어가기 위한 작은 실행. 하루하루, 단 1%라도 나아가기 위해.

간절함에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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