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_승화_4_결혼박람회에서 계약하기
신랑은 리스크 관리 전문가입니다. 저는 문제와 빠르게 부딪히는 탱커고요. 둘 다 결혼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23년도 12월 결혼을 결심했어요. 그 후 24년 3월, 직장인의 일상은 우당탕탕 흘러가고 주말은 가장 바쁜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흘러간 3개월여. 신랑은 결혼에 대해 정보를 정확히 파악한 뒤 움직이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매우 답답한 시점이었죠. 그래서 대뜸 결혼박람회를 가자고 했어요. 언제 갈지, 어디로 갈지에 대해 대화하다가 시간이 조금 더 늦어지자 저는 바로 가장 가까운 시기에 열리는 결혼박람회를 검색해 신랑에게 보여줬어요. 신랑은 예약일자를 최대한 미루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신랑이 그러더군요. 저와 닮은 동물이 있다고요. 벌꿀오소리입니다. 벌꿀오소리는 개의치 않습니다. 바로 가장 가까운 날짜로 예약했죠.
24년 4월 21일, 신랑은 강해보여야 한다고 멋을 냈어요. 저는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방문 예약을 한 당일, 배정된 플래너에게 전화가 왔어요. 본인을 소개하며 방문 전까지 고민해와야 하는 내용들을 장문의 문자로 전송해주었죠. 웨딩홀,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에 대한 니즈와 예산, 결혼 시점에 대한 내용들이었어요.
24년 4월, 아직 양가 인사도 하기 전이었습니다. 결혼 시점이 어디 있었겠어요. 해당 시점 스드메에 대한 유일한 니즈는 ‘기본만 하자’였습니다. 박람회 방문 전 제가 생각한 최고의 결혼식은 안 하는 거였어요. 둘 다 양가 첫 결혼, 결혼식을 안 하는 건 절대 불가능했습니다.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을 위한 이벤트가 아니니까요. 그러니 꼭 해야 한다면, 하객이 편안한 공간, 재미있는 이벤트로 만들고 싶었어요. 드레스 대신 정장을 맞춰 입고 싶었고요. 둘 다 바지 정장으로요. 스튜디오를 하려면 이것저것 번거롭고 불필요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본가 강아지랑 스냅 사진을 촬영하고 싶었답니다. 그러니 제가 고민해야 하는 건 별로 없었어요. 필요한 것만 골라서, 기본만 한다는 기준이 분명하게 서있었습니다.
박람회 장소로 이동하면서 저희는 다짐했어요. 오늘은 정보만 얻자고요. 이미지로 접했던 결혼박람회 장소는 늘 거대하고 화려해서 저희가 가는 곳도 그럴 줄 알았어요. 왠걸, 강남구청역 부근 이디야 매장을 전세내 사용하고 있었어요. 이디야 매장으로 들어가자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저희에게 누구에게 예약을 했는지 물어보았어요. 담당 플래너 이름을 말하자 소파 자리를 안내하고 상담안내지를 주면서 미리 적어달라고 했죠. 문자로 미리 받았던 내용들이었어요. 곧 담당 플래너가 찾아와 상담석으로 이동했어요. 상담석도 특별했어요. 바로 옆 플래너의 대화가 들리는 가까운 거리였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옆자리 짝궁과의 거리 정도의 간격. 오히려 마음을 놓고 계약은 없을지두,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결혼 일자 미정, 웨딩홀 희망사항은 밝고 비용이 적게 드는 곳. 스튜디오는 안 하고 드레스와 메이크업 사이에서 이야기가 길어졌어요. 저는 바지정장이 아니면 특별히 바라는 디자인이 없었고 오히려 신랑이 제게 뭐가 잘 어울릴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플래너가 제안하는 대표 브랜드들의 사진을 비교해보며 신랑은 무척 고민이 깊었어요. 그러자 플래너가 먼저 제안했어요. 예산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기본만 하는 가성비 타입, 해야하는 거 다 하는 평균 타입, 후회 안 남기는 럭셔리 타입으로요. 기본? 저희의 키워드였죠. 저희는 고민할 것도 없이 가성비 타입이었어요. 그러자 업체가 더 추려졌고, 신랑이 더 골라낸 뒤 제가 한 업체를 지정했어요. 그 후 메이크업은 신랑도 아리송한 부분이었죠. 그러자 다시 플래너가 제안했어요. 아이돌상, 배우상으로요. 저는 배우상을 선택헀고 메이크업도 빠르게 정리되었습니다. 희망 업체를 다 골랐다? 계약 이야기를 나눌 때죠.
저희 집 계약 주 담당자? 신랑입니다. 저는 벌꿀오소리고 신랑은 리스크 전문가니까요. 플래너가 제안하는 금액이 저는 아주 흡족했어요. 본식 드레스 1벌과 본식 헤어, 메이크업 1회에 아주 만족스러운 금액이었습니다. 플래너가 일하는 방식도 좋았어요. 결혼 준비 순서도를 묻는 저희에게 웨딩홀 예약부터 본식 이벤트까지 타임라인과 예상 금액을 정리해 제공하는 모습, 금액과 업체 특성 등에 대해서 투명하고 구체적으로, 아주 빠르게 답변하는 모습도 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다짐이 있었죠. 우리는 오늘 계약을 하지 않는 거였어요. 그래서 신랑은 ‘계약 거부자’가 되었어요. 그러자 플래너는 결혼 시장의 금액이 6개월에 1번씩 오른다는 점, 결혼 시기가 미정이라면 더더욱 계약을 해놔야 하는 이유, 업체의 신뢰성, 이 계약을 통해 할인받는 대략적인 금액 등에 대해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그 후 플래너는 저희가 대화를 나누도록 자리를 비웠어요.
안 한다며…?
신랑은 플래너가 자리를 비우자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물어봤어요. 저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제가 만족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어요. 당시 계약금이 20만원, 신랑은 알겠다며 플래너가 돌아오자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했어요. 플래너를 앞에 두고 신랑은 무척 꼼꼼히 계약서를 살펴본 뒤 보증 기간을 늘렸어요. 기존 1년에서 3년으로요! 플래너는 이 집은 신랑이 꼼꼼해서 아무 걱정 없겠다고 웃으며 계약서를 수정했어요.
계약금 결제를 마친 뒤 단체 카톡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일어나던 중 다른 직원 한 분이 다가왔어요. 신랑 예복도 프로모션 많이 하니까 이야기 좀 듣고 가시라고요. 플래너도 저 업체도 무척 오래된 곳이며 오늘 계약 건수 관련 이벤트도 있으니 이야기 들어보세요, 하며 등을 떠밀었어요. 저희는 그렇게 박람회 트레인에 올랐습니다. 뿌뿌!
이제 남성예복, 혼주 한복, 피부관리샵, 예물 부스를 돌기 시작하며 나눈 각기 다른 디테일한 사항들을 모두 적어보려고 해요.
남성 예복 업체 중 가장 오래 되었다는 테일러 샵이었어요. 자리에 앉자 저희의 외모와 인상 칭찬, 상담지에 적힌 글씨체 이야기로 시작해 담당 플래너를 칭찬했어요. 그 후 책자를 한 장씩 넘겨가며 남성 예복의 유형과 스타일, 트렌드에 대해서 빠르게 설명했답니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정장 스타일, 결혼식 때만 입는 연미복 스타일과 예복 스타일. 나비 모양의 타이나 넥타이의 넓이와 재질로 멋을 내는 방법. 신랑의 체구와 얼굴에 잘 어울리는 유형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테일러 샵에서 주로 사용하는 샘플 천들도 만져보며 촉감을 즐겼답니다. 그래도 신랑은 굳이 예약을 하냐, 하던 때 상담 직원이 승부수를 던졌어요. 계약금 10만원에 해당 샵에서 예복을 이용하지 않는 경우, 계약금은 별도 추가비용 없이 맞춤셔츠와 타이로 대체한다고요. 계약금 10만원을 낸 뒤 꼭 해당 샵에서 예복을 하지 않더라도 맞춤셔츠와 타이를 얻을 수 있는 거죠. 신랑이 망설이는 사이 제가 냉큼 계약금을 냈어요. 안 그래도 신랑에게 맞춤셔츠를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러자 다시 저희집 리스크 전문가가 출동했습니다. 계약서 내용을 아주 꼼꼼히 검토해야 하고, 모든 프로모션은 기록으로 남겨놔야만 나중에 문제가 없으니까요. 예복을 맞추는 경우 촬영 예복 2벌 무료 대여, 셔츠 등 그 외 악세서리 무료 제공. 대여시 금액 지정, 맞춤셔츠 금액 지정. 피팅비, 세탁비 명시, 그 외 악세서리 비용 지정해 기록까지 신랑은 완벽했습니다.
저희가 이 계약서를 쓰는 동안 옆에서 해당 샵을 칭찬하고 신랑의 꼼꼼함을 칭찬하시던 분이 있었어요. 옆 부스 사장님이었습니다. 저희는 계약서를 챙기면서 옆 부스로 사장님께 끌려 이동했어요. 양가 어머님 한복도 미리 보시면 좋죠. 신랑 신부가 선남선녀라 어머님들도 다 미인이시겠어요. 신랑이 고수를 닮았어요. 이런 칭찬들로 샤워한 날이었죠. 부스에 가니 상담 직원이 따로 앉아 계셨어요. 투명하고 흰 피부, 나이가 짐작되지 않는 동안과 우아한 분위기. 정말 한복 상담과 잘 어울리시는 분이었어요. 하지만 양가 어머님 한복에 돈이 한 두푼 일까요. 저는 저희 리스크 전문가 손을 꽉 잡았답니다. 하지만 또 브로셔가 말이죠? 아유, 참. 샘플 천들은 또 어떻고요? 신랑은 기본만 하자는 원칙에 대해 고민했어요. 만약 양가에서 맞춤 한복을 선택하신다면 좀 벗어나긴 했을 거에요. 그래도 저는 양가 어머님의 미모와 인품이 드러나는 고운 한복을 입혀드리고 싶었어요.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걸 해드리고 싶었어요. 신랑에게는 이대일의 형국이었습니다. 상담직원과 저, 그리고 신랑이었죠. 신랑은 제가 좋다면 그렇게 하자고 했고 다시 계약서 관리자가 출동했습니다. 대여 금액과 조건, 서비스로 추가비용 없이 포함되는 자수와 가봉, 그 외 악세서리 종류와 피팅비용 없음 등에 대해 모두 적은 뒤 정계약금 30만원을 지불했어요.
끝난 줄 알았겠죠? 다들 전문 상담 직원이신지 다음 타자가 저희 뒤에 서있었어요. 다음은 여성 전문 피부관리샵이었습니다. 아주 전략적인 곳이었어요. 신혼여행과 예물을 제외한다면 박람회장에서 가장 비싼 품목이어서인지 영업하는 서비스가 아주 심플했어요. 총 6가지 서비스 체험에 7만원. 드레스 라인을 위한 림프 이너테라피, 피부 브라이트닝, 피부 탄력케어, 얼굴 윤곽 관리, 모공 테라피, 팔뚝 슬리밍까지 총 6가지. 이번에는 제가 사양했고, 신랑이 냉큼 결제했어요. 그렇게 빠르게 피부관리 역을 통과했습니다. 초스피드 통과 후 예물 칸으로 이동했어요. 이왕 한다면 유니크한 반지를 하고 싶다는 저희에게 플래너가 추천한 곳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귀금속이라 그런지 부스에는 시그니처 라인 몇 개만 와있었고 독특한 디자인은 안 보였어요. 저는 금새 흥미를 잃어 다른 부스들이 정리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저와 달리 신랑은 상담직원과 대화하며 좋은 포인트를 발견했던 듯 해요. 신랑과 예물샵 상담직원은 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예물을 하는 경우 예산은 어느 정도인지, 프로모션과 서비스는 뭐가 있는지 아주 샅샅이 뒤졌어요. 긴 대화 끝에 추가 할인과 선물, 현금 지원에 쿠폰 증정을 계약서에 길게 다 적은 뒤 계약금 30만원을 지불했답니다.
예물샵 계약서까지 작성을 마치고 나니 플래너 외 계약서만 4장. 당일 박람회 이벤트에 응모하고 선물을 받아갈 수 있는 최소 자격이 된 거에요! 신랑은 신나서 달려갔지만 피부관리샵 계약은 포함되지 않았어요. 체험권을 구매한 걸로 간주되었죠. 게다가 안타깝게도 저희가 마지막 손님, 모두 정리를 마친 뒤 저희가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이렇게 저희는 박람회장 문을 닫고 나와 근처 KFC에서 징거 버거를 와구와구 먹었답니다. 이야기 듣고, 정보를 수집하고, 고민하고, 논의하고, 대화하고, 계약금들을 지불하면서 당이 똑 떨어졌어요. 박람회장 안 이디야가 아직 음료를 만들고 있었다면 100% 사먹었을 거에요.
나무늘보가 저보다 기운찰 것 같은 상태로 귀가했지만 결혼박람회 방문은 추천합니다.
일단 추진력이 생겨요. 결혼은 너무 큰 단어라 서로 무엇부터 시작해야하고, 무엇부터 대화를 나눠야 할지 알아차리기 너무 어려웠어요. 결혼이라는 그 큰 사건 안에서 우리가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 방향성을 찾는 기회였어요. 일일이 정보를 찾기보다 대화와 질문을 통해 큰 뼈대를 잡을 수 있었고요. 물론 박람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모두 믿을 수는 없지만, 여기서 얻은 키워드를 기점으로 정보를 더 확인해볼 수도 있었고요. 갑작스러운 이벤트, 돈과 계약이라는 복잡한 이슈 앞에서 서로가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리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제 부부로 살고 있는 시점에 돌아보면, 그 당시 한 계약들 전부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답니다. 저희가 안 내도 될 더 지불했던 부분도 분명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 비용 덕에 에너지와 시간을 아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동시에 신경쓰고 조정해야 하는 부분도 무수히 많으니까요. 다들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해주신 덕에, 이렇게 오연&승화의 결혼 열차 순항을 시작합니다. 다시 뿌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