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_승화_5_궁합보고 날짜 받고 덤으로 개명도 하기
5 저희 되게 불안한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결혼기_승화_5_궁합보고 날짜 받고 덤으로 개명도 하기
할리우드 영화에서 봤던 장면 같아요. 클라이막스에서 정말 아 나 이거 죽겠구나, 싶은 장면. 그 때 캐릭터들은 살아남은 이후 뭐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뭘 먹고, 어디로 놀러가고, 누굴 만나고 그런 이야기. 아마도 불안함과 공포가 드글드글 끓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불안할수록 단호한 말 한 마디가 간절해집니다. 특히 내가 잘 모르는 영역,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안한 영역이라면 더더욱. 그런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점집을 찾아갔어요. 당시 불안과 고민이 많아 확실한 말 한 마디가 듣고 싶었던 친구들 덕이었죠.
사람의 성과 나이를 맞히기로 유명한 곳이었어요
건물 하나를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보니 간판이 크게 달려 있어 찾기 쉬웠어요. 안에 들어가자 연속 드라마가 재생 중이었고 신문 1면에 선생님이 소개되었던 기사가 스크랩되어 있었어요. 최대 2인까지만 수용이 가능한 방으로 들어가 복채를 먼저 드렸어요. 친구는 개인, 저는 가족. 그리고 복채를 드린 뒤, 상담자의 얼굴 정면, 좌우, 손등을 확인했어요. 그러더니 흰 종이에 초록색 사인펜으로 그림과 글자를 섞어서 여서 일곱장을 슥슥 적어내렸어요. 갑자기 사인펜이 멈추고 종이를 다시 돌아보시더니, 그때서야 질문하는 상담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보셨죠.
친구의 상담이 끝난 뒤 제 차례가 됐어요.
24년도 3월 초, 저희가 아직 양가 부모님을 뵙기 전이었어요. 제가 궁금한 건 결혼, 그리고 직업이었죠. 그런데 제 이름을 말씀드릴 때부터 신기한 일이 생겼어요. 제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씀드린 뒤, 남자친구의 정보를 말했어요. 이어서 가족 정보도 드리려는 차에 바로 선생님이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가족 이야기를 듣기 전에요. 제 얼굴과 손을 보고 적어내렸던 종이 한 장을 보여주시며 저희가 현재 낡은 구름다리 위에 집을 짓고 있다고요. 헤어지거나 안정적인 토대에 새 집을 짓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고요. 음력 7월경이면 남자 운이 좀 풀려서 다 잘 풀릴 건데, 남자 이름이 안 좋아서 잘 풀릴 일도 충돌이 좀 생겨서 힘들게 살았을 거라고요. 저희집 가족들이 다 2024년이 힘든 해이니 재촉하지 말고, 압박도 말고, 그냥 기다리라고요.
그런데요, 처음에 제가 소개받았던 말 기억하시나요? “사람의 성과 나이를 맞힌다”는 말이요.
제 생년월일과 이름을 알려드리기 전에 그 종이에는 이미 제 성씨와 나이, 신랑의 성씨와 나이가 모두 적혀 있었어요. 제 친구도 그랬고, 그날 함께 간 다른 친구들도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자 신랑도 궁금해했어요. 신랑은 사주도 신점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몇 주 뒤, 저희는 함께 방문했어요.
같이 간 사람에 따라 그곳의 분위기도 달랐어요.
친구와 들어갔을 때는 다정하지만 사무적인 느낌이었어요. 다른 친구들 말로는 냉정하고 사무적인 느낌만 받았다는 경우도 있었고요. 신랑과 갔을 때는 굉장히 온화한 옆집 이모 느낌이었답니다. 그분은 신랑이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고생 많았다고 위로하셨어요. 저희 궁합도 걸리는 부분 하나 없이 잘 맞는데다 내년에 대운이 들어와 결혼이 성사되는 시기라고 하시면서 다시 개명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그리고 정말 이모처럼 따스한 조언을 해주셨어요. 자신감 갖고 살기. 내면이 억눌러져 있어 기를 못 펴니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존중하기. 나를 더 챙기는 습관과 일상 만들어 주변에서도 나를 존중하도록 내가 나를 더 존중하기.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정확히 발음하고 말하기.
그 해 6월, 웨딩홀 투어를 해야 하는 시점이 왔어요.
웨딩홀 투어를 하려면 뭐가 가장 먼저 필요할까요? 날짜입니다. 6월 중순, 저희는 점집을 다시 방문했어요. 저희는 몰라서 아무 준비 없이 털레털레 갔는데요, 그거 아셨나요? 결혼날짜를 받으려면 저희 생년월일, 양가 부모님 생년월일, 그리고 양가 부모님 결혼기념일까지 필요하답니다. 그리고 양가 모두에게 좋은 날짜를 찾는 작업이었어요. 그래서 25년 5월을 찾다가 괜찮은 날을 발견하면, 그날은 꼭 최소 한 명에게 안 좋은 날이지 뭐에요. 그렇게 5월 전후를 뒤지다가, 날짜는 3월로 당겨졌어요. 25년 3월 안에서 2일을 찾았는데 신부에게 완벽한 날은 아니지만, 새 가족이 되기에는 좋은 날이라는 말을 듣고 선택했답니다.
이날, 신랑은 개명을 결심한 차였어요.
지난 3월 이후 신랑의 개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시어머님 덕에 새 이름을 물어보기로 했죠.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어요. 선생님이 본인도 이름을 지을 순 있지만, 본인도 더 전문가에게 이름을 받는다고요. 자식과 손주 이름을 지어주신 곳이 있으니 소개해주겠다며 번호를 주셨어요. 이번에도 저번처럼 당부하시면서요. 바로 이름을 바꾸지 말고, 더 불러보고 잘 맞는 느낌이 들면 호적을 바꾸라고요. 그렇게 용건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점집 앞에 있는 전통찻집을 갔답니다. 대추를 다 갈아서 만들어 대추죽 같은 진한 맛, 자리에 앉자마자 주시는 직접 끓인 차, 생강 설탕을 묻힌 옛날 과자를 느긋하게 먹을 수 있는 정말 좋은 곳이라 저희는 점집에 갈 때면 꼭 가곤 했어요. 이날도 대추차를 수저로 떠먹으며 한숨 돌리고, 소개받은 개명 전문가에게 연락을 드렸어요. 그렇게 신랑은 세 글자였던 이름이, 두 글자가 되었답니다.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며 저는 꽤 즐겁다고 느껴요.
점을 보지 않았더라면, 질문을 하러 가지 않았더라면, 막연히 두려운 미래 속 안개를 계속 안고 계속 나아갔을지도 몰라요 문제와 선택지들을 더 시원하게 쳐내기 위해 단순화하는 시간이었어요. 결혼 날짜도, 개명도, 문제가 풀린다고 들었던 시기도 다 잘 맞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플라시보 효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가 그 플라시보 효과를 맛있게 먹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받은 긍정적인 결과입니다. 앞으로도 제 마음에 막연한 안개가 낄 때, 남편 손을 잡고 또 가려고 해요. 질문하러 갈 예정입니다.
앗 맞다. 음력 7월 이야기는 딱 맞았어요. 양력 8월부터 정체되어 있던 결혼 관련 문제들이 하나씩 구렁이 담 넘어가듯 풀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