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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계획 (by you)

사랑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지키는 것

by 리올

누군가를 만나고, 설레고, 함께 꿈꾸고 그러다가 갑자기 끝을 맞이하는 경험, 그건 언제나 슬프고 아린 일이다. 어느 봄날에 불어닥친 벚꽃처럼 강력한 폭풍은 갑작스럽지만 너무나도 달콤하게 휘몰아쳤고 그 안에서 정신을 차리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감정이 오갔고,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 그를 만나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음악이 나오는 분수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 순간, 그 찰나의 감정에 우린 빠져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주말에 예정돼 있던 출장이 빨리 끝났으면, 그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 사람이라면, 함께 의지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향해 같이 걸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아니면, 그 감정을 빌려 내가 나를 설득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눈에서 느껴지는 신중함, 진중함 그리고 책임감. 어떠한 부분에서 어렴풋이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의 한 부분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속에서 자석의 반대극에 끌리듯 마음이 많이 갔던 것 같다.




어느 날처럼 만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던 도중 그가 내 팔목에 있는 작은 타투에 관해 물었고 나는 모든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아니지만 왜 이걸 선택하게 되었고 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 타투는 단순히 젊은 시절 충동적인 멋이나 반항의 의미로 새긴 것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을 너무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뒤 내 삶에서 가장 존경하는 그분을 내 삶에 늘 간직하고 기억하겠다는 마음으로 오랜 고민 끝에 새긴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고..




내 인생의 큰 부분이고, 깊은 애정과 상처, 다짐이 담긴 상징과도 같다. 그와 나는 몇 십해를 지나 이 타이밍, 이 순간에 만나게 되었고 서로 살아온 방식, 가치관 그리고 겪어온 경험은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삶의 배경을 존중하고 싶었다. 강한 유교적 가치관이나 시선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도 이해하려고 했다. 본인이 사랑하는 나의 사람을 모두가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그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만큼 나도 나의 부모님을 깊이 사랑하고 존경했다.




다만 처음엔 믿기 어려웠던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미래를 이야기하던 사람이, 단 하나의 이유로 마음을 돌렸다. 적어도 내가 봤을 땐 트리거가 된 사건은 타투이다.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어서 내 팔목에 새긴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내가 지금까지 겪어온 일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해 왔고 그래서 지금의 성숙된 내가 있는지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 그 사람의 앞에서 나는 내 존재가 부정되고 지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저 혼란스러웠다. 지금 여기서 잘못된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 혼자만의 오랜 상상 속에 있는 결혼과 어울리는 ‘적합한 여성상’에 내가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렇게 마음이 쉬이 접힐 수 있는 건가?




내가 타투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끝나지 않았을까. 혹은 내가 아버지를 상징하는 이 타투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제거수술을 받았다면 그의 마음에 쏙 드는 아내가 되어 우린 행복했을까?

하지만 그런 관계가 계속 이어졌다면, 그 안의 나는 점점 더 작아졌을지도 모른다. 그가 추구하는 삶은 어떠한 누군가에게도 욕먹지 않고 뒤에서 수군거려지지 않는 단정한 삶을 원하는 것 같았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고, 좋은 사람이고 싶고,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음을 알리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의 단정한 삶의 일부가 되길 바랐던 것 같다.




그의 머릿속 인생계획표에는 결혼 시기와 아이 출산 시기까지 있었고 결혼식 때 나의 신부가 어떤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입었으면 하는 것까지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계획표의 빈칸을 채워줄 사람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모든 게 완벽한 그 퍼즐에 그가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퍼즐 한 조각.




배우자 그리고 아이들.




그는 내가 아니었더라도 그 퍼즐을 맞춰줄 사람이라면 평생의 사랑을 약속할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일방적으로 정해진 누군가의 계획에 맞춰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명에게 전부 사랑받지는 않아도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존중과 이해 그리고 다름을 인정해 주는 것에서 시작하고 싶다.

사람을 단편적인 무엇인가로 판단해 버리기 전에 일단은 그에 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나와 다른 삶이 나쁜 게 아니다. 좀 달랐던 당신과 나의 인생을 지나 이 순간 이렇게 만났고 서로 존중하며 이야기하며 앞으로 나아가면 되지 않았을까.




모두에게 이해받지는 못 할 수 있다. 다만 최소한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 와의 마지막이 안타까운 이유는 성숙하지 않은 어른의 결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작이 쉽지 않듯 결말도 쉬워서는 안 된다. 누군가와 만남을 시작할 때는 서로에게 잘 보이고자 옷도 사고, 향수도 뿌려보고, 살도 좀 빼고, 예쁘게 말하는 연습도 좀 해보고 꽃도 사보고, 데이트코스도 오래 생각해서 짜보고 이렇게 노력하듯이,

만남을 마무리할 때도 서로에게 예의를 지켜서 오랜 시간 천천히 해야 한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준 진심이라는 감정이 가볍게 툭 털어지는 걸 보는 건 생각보다 상처로 남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전부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에게도 뭔지 모를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가치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아직, 감정보다 그의 가치관과 주변인들의 시선을 더 먼저 선택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모든 경험은 쌓여 나라는 인간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 나는 항상 믿고 있고 이번의 경험도 지금은 좀 힘들지만 감사히 받아들여야겠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더 많이 배웠다.




잠시동안 뭐에 홀린 것처럼 그 와의 행복한 미래도 꿈꾸었던 것 같다. 처음엔 나 자신이 한심하고, 왜 이렇게 쉽게 마음을 줬을까 자책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다. 나는 진심이었다는 것. 사랑은 맞춰가는 것이지만, 나를 작아지게 하며 맞춰가는 게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다가올 인연을 사랑하겠지만 내 존재를 숨기고 감추면서까지 그 연을 지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 경험은 내게 실망도 줬지만, 그만큼 나를 더 단단하게 꺼내주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남이던 너와 내가 만나면 모든 게 다르고 어색하다. 서로 다른 삶의 배경에서 나와 마주 선 사람들이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를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존재를 작게 만들고 눈치 보며 누가 정해둔 기준에 맞추어야만 한다면 그것 또한 스스로에게 미안해지는 행동 일 것 같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며 함께 나아가는 그런 관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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