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서 한창 일하다 오전 10시가 돼갈 때쯤, 항상 비슷한 시간에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가 해서 보면 여지없이 우리 사무실에 매일 우편물을 전달해 주시는 집배원 분이시다.
내 자리는 사무실 중앙이라 직접 그분께 우편물을 건네받거나 인사를 나눈 적은 없는데, 아침마다 들리는 활기찬 인사 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면 항상 웃는 얼굴의 그분을 보게 된다. 내가 알기로 우리 사무실 담당자가 올해 초 그분으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분의 쳐진 목소리를 듣거나 무표정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반면 아직도 시차 적응을 못하여 늦잠 끝에 허겁지겁 출근한 나는 오늘 아침 상당히 비몽사몽 한 상태였다. 오늘도 10시가 안 돼서 집배원분의 힘찬 인사 소리가 들렸고, 유독 오늘 그분이 우편물을 전달하고 나가실 때까지 멍하니 쳐다보게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은 사람 좋은 환한 미소와 씩씩한 인사, 안녕하세요.
아니, 저분은 어떻게 매일 저렇게 행복하고 즐겁게 인사하며 일을 하실 수 있는 거지? 하는 물음이 오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분의 목소리를 듣거나 표정을 보면 그 누구라도 그분이 얼마나 자기 일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찰나에 내 기분까지 매번 덩달아 좋아진다. 대체 그분의 그런 에너지는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 유독 오늘 아침 그분의 인사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주로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는데 딱히 이유는 없고 그냥 김밥을 엄청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사무실 주변에 줄을 서서 사야 할 정도로 유명한 김밥 맛집이 있기도 하다. 오늘은 운 좋게 기다리지 않고 바로 주문을 할 수 있었다. 평소 늘 마시던 걸로의 먹는 버전인 늘 먹던 소고기 김밥을 주문했다. 원래는 주문하자마자 즉석으로 김밥을 싸주시는데 오늘은 이미 포장된 김밥을 소고기 김밥이라고 건네받았다. 다 식어서 실망스럽긴 했지만 뭐 빨리 받았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얼른 계산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 열어보니 참치김밥이었다. 소고기 김밥이 500원 더 비싸기도 하고, 출근하고 몇 안 되는 즐거움인 나만의 점심메뉴를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다시 김밥집에 가서 싸주신 김밥이 내가 주문한 소고기 김밥이 아니라고 말했다. 불과 5분도 안 됐는데 주인아저씨가 김밥을 펴보시면서 언제 사가셨죠? 하고 물어왔다. 방금 전에요.라고 대답했다.
주인아저씨가 김밥을 펴보시더니 어 그러네? 참치네. 이거 드셨죠?라고 물어오셨다.
안 먹었는데요.라고 대답했더니
일단 참치김밥 이것도 드세요, 소고기 김밥은 또 싸드 릴테까.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오류 난 참치김밥 한 줄 더 준다는 말보다 김밥을 잘못 싸드려 왔다갔다하게해서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길 기대했다. 내가 필요한 건 새로 싼 소고기 김밥 한 줄과 짧은 인사뿐이었다.
그래서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우리 어차피 이거 필요 없어요, 못 팔아요.
하시길래
기분이 언짢아져서 나도 모르게 저도 필요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죄송하단 말 한마디 없이 참치김밥 가져가라고 들이미는 바람에 나는 계획에 없던 두줄의 김밥을 들고 나왔다.
나오면서 내가 아무리 김밥을 좋아해도 앞으로 이 집을 또 오는 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나 스스로에 대해 몰랐던 사실인데 내가 사소한 말 한마디 특히 고맙다, 미안하다는 인사에 엄청 집착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평소 상냥하고 살가운 캐릭터는 아니지만 고맙고 미안한 상황에서 마음을 표현하는 건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김밥이 맛있어도 이런 상황에서 죄송하다는 말 대신 김밥 한 줄 서비스(?)를 들이미는 김밥집주인을 또 보고 싶진 않다.
사무실로 돌아와 다시 싸서 따뜻한 소고기 김밥을 우걱우걱 씹으면서 김밥이 이렇게 맛있어서 손님을 그렇게 대하는 건가? 이런 물색없는 생각을 하며 집배원분의 아침 인사를 다시 떠올렸다. 아까 아침만 해도 그분 덕에 참 기분이 좋았는데... 너무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오늘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이 사소한 다섯 마디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집배원 분과 소고기 김밥 한 줄 덕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끄적인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퇴근하는데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누군가의 인사가 또 들려왔다.
밥은 먹었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지구대 경찰관 분이 역사 계단에서 자주 주무시는(출퇴근길에 나도 몇 번 뵌 적이 있다) 노숙자 아저씨께 건네는 인사였다. 노숙자 아저씨가 시크하게 고개를 끄덕이신다. 밥은 먹었어요 이 한 마디에 그 경찰관 분이 괜히 잘생겨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