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드디어 회사 동아리 첫 정식 모임이 있었다.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어떤 사람을 잘 안다고 하는 것만큼 요란스러운 설레발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동아리는 아직 사내 공식 동아리가 아니라서 비교적 서로 친한 동료들이 모여있는데, 그래서 나름대로 그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모임을 통해 동료들의 새로운 모습과 미처 몰랐던 생각들을 알게 되었다.
일단 책에 대해 집중하는 포인트나 감상평이 제 각각이었는데, 특히 몇 명은 왜 저렇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한 대목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언급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책에 대한 논의 중간중간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가 툭툭 튀어나오고 나서야 서로 다른 의견이 저마다의 크고 작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 동아리 활동은 시즌별로 주제가 정해지면, 그에 관련한 책 5권을 선정해 읽은 다음 한 달에 한번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요 골자다. 첫 시즌의 주제는 재테크와 자기 계발, 논의한 첫 책은 청울림(유대열)의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였다.
대기업에서 10년 넘게 일한 저자는 마흔이라는 나이와 갑작스러운 선배의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본인 삶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다. 그리고 퇴사를 한다. 퇴사 후 부동산 중개업무를 하려고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는 데 그 과정에서 전업투자자의 길에 들어서고, 3년 만에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다. 나는 돈 공부에 있어서는 상당히 게으르고, 부지런을 떨려고 해도 그쪽으로는 영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금세 포기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동아리의 첫 주제가 재테크와 자기 계발로 정해지고, 회원들이 (내가 몰랐던) 책을 추천할 때 이 참에 잘됐다 싶었다.
낼모레 마흔이라는 나이와 (올해 있었던) 승진 인사라는 사건은 나로 하여금 저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게 했다. 그리고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에서, 업무와 조직에 대한 나의 생각이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만, 지금 당장 내가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회사 말고 없다는 것도 내가 처한 또 다른 현실이었다.
10년 동안 내 일과 삶에 대해 퀘스천 마크를 찍은 적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냥 그때마다 그 질문과 정면 승부하지 않고, 미루거나 피하면서 몸과 마음을 편한 쪽으로 기울이며 살아왔을 뿐이다. 어쩌다 한 번이었던 의문이 두 번, 세 번이 되고 내 하루의 상당 시간을 장악하게 되자 이제 나는 결정을 안 할 수 없게 되었다.
다니면서 준비 vs 나가서 준비
책의 저자는 과감히 퇴사를 하고, 자기 삶 전체에 배수진을 친다. 중간에 생활비 때문에 잠깐 회사를 다니지만 전업투자자로서 사생결단의 노력이 필요할 때는, 그마저도 관두고 철저히 그것에만 몰입한다. 제2의 미래를 준비할 때, 현재 일과 병행하며 준비하느냐와 나가서 준비하냐는 참 어려운 문제다. 나도 가장 먼저 고민하고, 가장 많이 고민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만고 끝에 내린 내 결정은 일단 병행해보자는 쪽이 되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가 확실하고 그것이 현재 일과 양립할 수 없다면 새로운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맞겠지만, 희미하게 윤곽만 있고 확신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고생스럽더라도 일단은 병행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또한 내 소득이 회사에서 일하고 받는 월급, 즉 근로소득 하나라는 것도 큰 이유로 작용했다.
그래서 올해 봄부터 나름대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중인데 실제로 몸과 마음이 상당히 피곤하다. 게다가 (자칫) 다리 한쪽을 걸쳤다는 핑계로 죽도 밥도 아니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내 마음가짐을 단속해야 한다. (나와 다른 선택을 했지만) 삶을 새롭게 바꾸기 위한 저자의 무서운 노력과 철저한 자기 관리를 보면서 나는 큰 자극을 받았다. 나의 경우 미래를 위해 들이는 시간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니, 시간을 더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계획한 것을 밀도 있게 실행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업무와 관련 있는 vs 업무와 관련 없는
지금과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위의 사안만큼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것을 찾거나, 업무 자체를 업그레이드시킬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던 시절이 꽤 길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 업무 특성과 내 적성상 매번 '회사 업무와 관련 없는 쪽'으로 눈이 갔다.
자기 계발 책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내용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우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아 (승진을 통해) 몸값을 올리고 발전을 도모하는 게 시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얘기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체계와 기준이 확립된 조직을 전제한 것이니, 나의 경우 이래저래 업무와 관련 있는 것으로 승부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여전히 문득문득 지금까지 해온 게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속상하기도 하고, 길이 있는데 내가 못 찾은 걸까 봐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업무적으로 뭔가 해보려고 한 시도들은 늘 흐지부지되거나 처참히 부서졌던걸 보면 어차피 그 길은 내 길이 아니었던 것 같다.
대기업 직원이었던 저자 역시 본인의 업무와 상관없었던 부동산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 다만 부동산이라는 분야는 그 자체로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고, 본인의 성과를 기반으로 책과 강연이라는 콘텐츠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에서 장점이 있었다. 부동산을 통한 재테크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배우려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의 근성과 노력을 보면 어떤 분야를 택했어도 성과를 냈을 분이란 생각이 들지만, 스스로 흥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분야로 제2의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연 저자가 참 부러웠다.
자기 계발 책임에도 이 책에서는 그 흔한 ~하는 법을 발견하긴 어렵다.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를 향해 정석의 단계를 밟고 우직하게 노력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룰 뿐이다.
'아, 누구는 저렇게 해서 돈 많이 버는데 나는 뭔가?'가 아니라, '아 저렇게까지 하니까 경제적 자유를 얻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해서 특히나 좋았다.
평소 관심 두지 않았던 책을 읽으면서 내 삶도 되돌아보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서 유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