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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뻔해서 너무 틀림없는

투 대리 프로젝트

by 앤디


뭐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회사에 출근만 하면 시종일관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계속되었다.

(이래서 친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증상이 최대리에게도 나타났다. 언 발에 오줌누기가 될지언정, 우리에게 즉각적인 임시변통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런 우리 둘이서 생각해낸 건 칼퇴 후, 매운 음식에 술 한잔 그리고 코인 노래방이었다.

나는 사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매운 음식점에서 제시하는 맵기 단계에서 중간단계의 보통맛을 골라도 매번 눈물 콧물을 쏟는 편이다. 매운 음식을 한 번 먹을라 치면 추접스럽고 성가셔지는 내 체질을 잘 알기 때문에 진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외에는 (감히) 매운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최대리와 약속을 정하기 전부터 희한하게 계속 매운 음식이 땡겼다. 원래 만나기로 한 날 비가 오면 녹두전에 막걸리를 걸치려 했지만 (기상 예보와 달리) 그날 비가 오지 않아 매운 닭발로 결정하였다.

매운 닭발에 매운 등갈비까지 추가하고 청하도 시켰다.

매운 음식에 당연히 뒤따라와줘야 하는 날치알주먹밥과 계란찜도 시켰다. 우리 기호에 들어맞는 거한 술상을 차려 놓고 둘 다 참 맛있게 먹었다. 술이든 매운 음식이든 우아하게 잘 먹는 최대리와 달리 (예상대로) 나는 눈물 콧물 훔치느라 바빴지만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확 잊게 되었다.






1차의 탄력을 그대로 이어가고자 2차인 코인 노래방으로 향했다. 노래방에 가기 전 최대리가 시원한 것을 마시자고 하여 잠시 카페에 들어갔다.
테이크아웃을 할 것이었기 때문에 음료를 주문하고 잠시 서서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다음으로 들어온 손님이 우리를 쳐다보면서 계속 혼잣말을 하길래 대화를 나누면서도 경계의 눈초리로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계속 우리의 대화를 엿들으며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나이 좀 있어 보이는데?'를 내뱉었다. 그때 최대리와 나는 정기적으로 공중목욕탕에 가냐 안 가냐 그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그분이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그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노골적으로 남의 대화를 듣는 것도, 빤히 쳐다보며 마음의 소리를 내뱉는 것도 상당히 불쾌하였다. 우리 음료가 나오자마자 최대리와 나는 둘 다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음료를 챙겨 들고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가 먼저 최대리에게,
ㅡ 우리 옆에 있던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았어?
물어보았다.

최대리가,
ㅡ우리 보면서 나이 좀 있어 보인다고 그러던데?

사실 나는 그 말을 나만 들은 줄 알고 귀를 의심했는데 최대리도 똑똑이 들은 것이다. 나이 좀 어려 보이는데? 했어도 눈빛과 행동이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을 판이었는데 갑자기 매운 음식의 기분 좋은 얼얼함이 확 깨었다.





생각지도 못한 불쾌감을 얻고 다시 코인 노래방으로 향했다.
우리의 두 번째 코인 노래방이었다. 우리의 코인 노래방 역사는 올 연초에 있었던 승진 인사 때 시작되었다. 그날 우리 둘은 승진에서 물먹은 울분을 고래고래 노래에 담았다. 그날 뭔가 풀리긴 한 건지 (둘 다) 생애 첫 코인 노래방에 대한 만족감이 커서 그때와 똑같이 복사하고 붙여 넣었다.

신곡은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응답하라 19 땡땡의 느낌으로 한참 불러제끼고 있는데 갑자기 앳된 직원이 뭐라 뭐라 말하면서 우리 방에 들어왔다. 내 노랫소리에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는데, 우리 둘의 얼굴(!)을 확인한 직원이 '아, 아니에요!' 하더니 겸연쩍게 웃으며 뒷걸음질 쳐 황급히 방을 나갔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고 머리를 굴리고 시계를 봤더니 밤 10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랬다... 노래방 직원은 손님들의 (연식을 확인하기 위한) 신분증 확인을 하러 들어온 것이었고, 그녀는 우리 얼굴을 보고 그럴 필요가 없었구나 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 나간 것이었다.
음... 아주 가끔... 술집에서는 (얼굴에서 행여 드러나도) 신분증 확인이라는 절차를 굳이 거쳐 손님을 기분 좋게도 해주던데... 노래방의 그 칠흑 같은 어둠에서도 우리 연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해버린 직원 분의 눈썰미와 그 소스라침이 괜히 참 섭섭하게 느껴졌다. 카페에서부터 노래방까지 일면식 없는 사람들에게 나이 좀 있어 보인다고 연타로 때려 맞으니 (빼도 박도 못한 사실이어도) 충격이었다. 다시 매운 닭발을 먹으며 눈물 콧물을 쏟아야 하는 건가 아주 잠깐 고민하였다.





뻔한 것은 매번은 아니어도 꽤 자주 맞는 것 같다.


매운 음식과 술 한잔, 노래방은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리고...

나이 들었는데 마침 또 그렇게 보이는 것은 참 서글프다.


뻔하지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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