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후 지금까지 엄청난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삶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당 부분 (뭔지도 잘 모르는) 워라밸을 추구했고, 운 좋게 그것이 가능한 삶이었다.
그것이 축적되어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무엇에 대해 억울할 것도 없다. (이 정도일 줄 몰랐던 것이 분명 있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다 내가 선택한 것이고, 자초한 일이었다.
어제 책장을 정리하다가 상당히 오글거리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였다. 언제 무슨 정신으로 산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책 제목에서부터 그 시절 나의 의지를 확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그 누가 뭐라 해도) '회사 안'에서 잘 해내고 싶었던 내 의지였다.
지금껏 책장에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내 공간 안에 있는 걸 알아버린 이상 지금의 나는 이 오글거림을 가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내 책장에서 그 책을 내쫓기로 결심하고 (버리기 전에) 한 번 훑어보자는 마음으로 첫 장을 폈다.
지금 내 상황에 맞는 내용도 있었고, 전혀 맞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지금보다 어릴 때였으면 사소한 단어 하나에도 눈이 흔들리고 귀가 펄럭거렸을 테지만 지금은 굳이 나랑 안 맞는 것에 동요되거나 하진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한 구절에서 내 동공이 심하게 지진 나버리는 것을 느꼈다.
직장을 떠난 뒤 가장 생존력이 떨어지는 직업, 조직을 떠났을 때 명확한 자기 분야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직업에 내 일이 있었다. (아마 이 책을 사서 읽었을 당시엔 이것이 보이지 않았으리라) 참 바보 같지만 내가 10년 만에 깨달은 사실이 너무 간단한 한 문장으로 씌어 있었다. 그때는 안 보이던 문장이 이제는 그것만 보일 정도로 내가 확 바뀐 걸까.
사실 내가 발 딛는 시스템의 민낯을 눈치채고, 썩 괜찮을 줄 알았던 선택에 대한 의문이 생긴 건 꽤 되었다.
머리 아프니까, 두려우니까 모른 척 지나가고 아닌 척 덮어두었던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의문들이 (나도 모르는 새) 내 무게중심을 바꿔버린 건지 나는 요즘 나를 포함한 모든 고인 것에 대해 극도로 염증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