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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게 살면 안 되겠어?

투 대리 프로젝트

by 앤디



입사 후 지금까지 엄청난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삶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당 부분 (뭔지도 잘 모르는) 워라밸을 추구했고, 운 좋게 그것이 가능한 삶이었다.

그것이 축적되어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무엇에 대해 억울할 것도 없다. (이 정도일 줄 몰랐던 것이 분명 있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다 내가 선택한 것이고, 자초한 일이었다.




어제 책장을 정리하다가 상당히 오글거리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였다. 언제 무슨 정신으로 산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책 제목에서부터 그 시절 나의 의지를 확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그 누가 뭐라 해도) '회사 안'에서 잘 해내고 싶었던 내 의지였다.



지금껏 책장에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내 공간 안에 있는 걸 알아버린 이상 지금의 나는 이 오글거림을 가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내 책장에서 그 책을 내쫓기로 결심하고 (버리기 전에) 한 번 훑어보자는 마음으로 첫 장을 폈다.

지금 내 상황에 맞는 내용도 있었고, 전혀 맞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지금보다 어릴 때였으면 사소한 단어 하나에도 눈이 흔들리고 귀가 펄럭거렸을 테지만 지금은 굳이 나랑 안 맞는 것에 동요되거나 하진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한 구절에서 내 동공이 심하게 지진 나버리는 것을 느꼈다.

직장을 떠난 뒤 가장 생존력이 떨어지는 직업, 조직을 떠났을 때 명확한 자기 분야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직업에 내 일이 있었다. (아마 이 책을 사서 읽었을 당시엔 이것이 보이지 않았으리라)
참 바보 같지만 내가 10년 만에 깨달은 사실이 너무 간단한 한 문장으로 씌어 있었다.

그때는 안 보이던 문장이 이제는 그것만 보일 정도로 내가 확 바뀐 걸까.





사실 내가 발 딛는 시스템의 민낯을 눈치채고, 썩 괜찮을 줄 알았던 선택에 대한 의문이 생긴 건 꽤 되었다.

머리 아프니까, 두려우니까 모른 척 지나가고 아닌 척 덮어두었던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의문들이 (나도 모르는 새) 내 무게중심을 바꿔버린 건지 나는 요즘 나를 포함한 모든 고인 것에 대해 극도로 염증을 느끼고 있다.


고인 업무, 고인 기준, 고인 접근,
고인 역할, 고인 태도, 고인 사고,
고인 너, 그리고 만만찮게 고인 나.



이런 내 변화에 나 스스로도 어쩔 줄 몰라하니까 한 친구는 나보고 너무 조급해 보인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지금껏 그랬듯 그냥 그렇게 살면 안 되겠어? 물어왔다.

어, 아직 방법은 못 찾았지만
더 이상 '그렇게'는 안될 것 같아.
아직 나는 연꽃잎 위에 있는 고인 물외에
보기 좋다 느낀 고인 물은 발견하지 못했어.






우물쭈물하다가 친구에게 못한 내 대답이었다.



바로 오늘의 나를 놓고 보면 지나친 욕심인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떠났을 때 명확해지고 싶다.
그래서 떠난 뒤에도 잘 살아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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