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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커리어

by 앤디


지금껏 내가 품고 있었던 오해 중 가장 크고 깊은 오해는 ‘내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게 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나는 자발적으로 수많은 모임과 강연에 참여했다. 당연히 나에 대해 잘 알고 싶어서 택한 몸부림이자 발악이었다. 수차례 나 자신을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 내몬 덕분에 다행히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나에 대해 많이 아는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 속한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휩쓸린 내가 아닌 홀로 서 있는 나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은 참 많이 외로운 작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거나,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일 것 같으면 유독 더 그쪽을 향해 달려갔던 것 같다.

특히 11월 첫째 주에 참석한 하루짜리 모임은 지금 바로 현시점에서의 나를 도마 위에 올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주었다. 강연의 제목부터 오늘의 내 고민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커리어:
창업, 이직, 사이드 잡 나는 뭐가 맞을까?


강연자는 광고회사 9년 차에 3개월간 단골 술집을 인수 및 운영한 뒤, 퇴직금만 가지고 본인만의 공간 브랜드를 론칭한 뒤 문화공간 기획자로 활동하고 계신 분이었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열 명 남짓한 참여자들의 자기소개가 있었다. 하는 일도 제각각이고, 처한 상황도 조금씩 달랐지만 일에 대한 만족도, 새로운 커리어와 앞으로의 비전, 현재 몸 담고 있는 업과 조직문화에 대한 염증을 고민하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했다. 특히 나와 똑같이 현재 입사 9년 차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 있었는데, 강연자 분이 나와 그분의 소개를 듣더니 본인도 그렇고 직장인에게 9년이란 아마도 마의 9년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 한마디에 강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외로움이 조금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업무를 고려할 때 이직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데다가, 애초에 이 고민을 시작할 때부터 조직 생활 자체를 접고 싶다는 생각이 커 이직이란 옵션은 선택지에서 바로 소거되었다.

남은 건 창업과 사이드 잡이었다. 사실 예전에 창업은 아예 꿈도 꾸지 않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한 분야였는데 1년 남짓 나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창업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다만, 무작정 뛰어들기엔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고, 그것이 갖는 리스크에 대해서 직,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게 너무 많아서 어떤 행동을 해보지는 못했다. 아이템이 확실히 잡히면 (조금 엉성하더라도) 내년에 실제의 한 발을 떼 볼 것이다.

사실 창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결국 사이드잡이라는 범주 안에 있다. 1년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내가 견딜 수 있는 것과 견딜 수 없는 것, 흥미를 느끼는 것과 노력해도 도저히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집요하게 살폈다. 이제 그것들을 정리해서 구체적인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고 도장 깨기의 마음으로 하나씩 깨나 가기로 한다. 특히 스스로 먹고사는 문제는 모든 일의 전제이자 내 힘으로 꼭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에 나라는 인간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어떻게 얼마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강연자가 소개하는 사례 속에서 의미 있게 다가온 걸 정리하면 크게 두 가지였다.


1. 회사를 다니면서 그다음의 커리어를 계획하고 쌓아나가는 '사이드 허슬러'들이 다른 일을 하며 개인의 성장과 부수입을 창출하는 동안의 평균 수면 시간이 2~3시간이었다는 것.


2. 주 52시간 근무제가 점점 자리 잡혀가는 시대에 각자의 일주일 중 52시간을 뺀 나머지 116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창업이든 이직이든 사이드잡이든 일단 뭔가를 이뤄낸 사람들의 특징은 정말 ‘무조건 하고 본다’에 있었다.

실질적인 결과물을 야무지게 내고 본인 일에 대한 철학이 단단해 보이는 강연자 분조차 창업을 하고 나서 직업의 정체성을 찾는 데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지 6년 차에 접어들지만, 어떤 일에 대해 뭔가 말할 수 있으려면 10년의 업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요즘도 끊임없이 성장과 커리어를 고민한다고 했다. 커리어를 바꾼 경험자가 3년과 10년이란 구체적인 수치로 단계별 소요시간을 제시해주니 다음 커리어를 위한 준비에 생각뿐 아니라 즉각적인 실천이 왜 뒤따라야 하는지 한방에 정리되었다.



나는 지금 사이드 허슬러의 삶을 시작하는 출발선에 서 있다.


수년 뒤에는 내 직업의 정체성을 찾고, 10년 뒤쯤에는 열심히 쌓아 올린 '지극히 사적인 커리어'를 자신 있게 말고 있는 나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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