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수능 성적 발표 소식과 함께 수능 만점자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독하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배운 걸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출제자가 낸 문제를 다 맞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 때 공부를 하면서도 내가 공부한 데서 시험 문제가 하나도 안 나올까 봐 전전긍긍한 적이 많았고 실제 그런 식으로 전개되는 꿈을 꽤 많이 꿨었다. 나의 올챙이 적에 대한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남이 내는 문제를 완벽히 잘 맞히는 저 친구는 나중에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 역시 스스로 잘 던지고 잘 대답할 것만 같은 생각에 부러워졌다.
살면서 올 한 해만큼 나 자신에게 질문을 많이 던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남이 내는 문제들만 의식하고 그에 대한 답 찾기만 바빴던 내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문제를 잘 만들리가 없었다. (비록 수동적이었어도 주어진 문제에 맞는 답을 찾는 것도 쉬운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문제를 직접 만들고 답을 찾는 건 정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낼모레 마흔인 이 시점에 어쩌면 나는 이제야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나의 일에 대한 질문을 잘 던지려면 일단 나에 대해 잘 알아야 했다. 일하면서도 여기저기 나를 노출시켜 나를 알아가는 방법으로 주로 내가 취한 것은 강연 듣기, 스터디 참여였다. 그리고 이건 일 년 내내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한 강연을 들으면 다른 강연을 듣게 되고, 한 스터디를 참여하면 다른 스터디를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참여한 스터디에서 그다음에 진행되는 콘퍼런스를 홍보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콘퍼런스는 토요일 하루 종일 진행되는 데다가, 물색없는 팔랑귀가 또 펄럭 펄럭거릴 조짐이 보여 처음에는 안 가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다 우연히 강연자 중 한 분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바로 신청을 하고 말았다.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 나를 서울로 이끄신 하유진 강연자 님은 '일과 나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강연 내용뿐 아니라 목소리 자체도 워낙 차분하셔서 그런가 강연 내내 내 마음이 어루만져지는 기분이 들었다.
'취업자 중 평소 가까운 미래에 직장(직업)을 잃거나 바꾸어야 한다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직장인이 59.1%로 절반을 넘겼다'는 이야기나, 취준생의 꿈은 입사였는데 직장인의 꿈이 결국 퇴사가 되고야 마는 기이한 현상 등등 말씀 하나하나 (어쩜 그렇게 모조리) 내 이야기들 뿐이었다.
특히 일에 대한 관점을 정리해주시는 부분에서는 진짜 마음을 읽힌 기분이 들었다. 그 관점 중 하나가 바로 어제까지의 내가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을 함으로써 생기는 물질적 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그 외 다른 보상에는 관심도 없고 받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 이외의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얻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내가 그랬다.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즐겁게 지냈으니 후회는 없지만 지금 나는 변심을 했다. 그러고 나니 일이 슬퍼지고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고 계속 이래도 되는 건가 스스로 한 적 없던 질문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강연자 님의 정리된 설명을 들으니 나는 지금 (저 관점에서) 일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싶은, 그래서 결국 일과 나의 관계를 달리 정의하고 싶은 단계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스스로에게 나만의 문제를 내고 나만의 정답을 찾으려는 이 시간은 꼭 필요하고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콘퍼런스의 제목이기도 한 '일의 기쁨과 슬픔' 이 두 가지는 일을 하는 한, 둘 다 안고 가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은 해도 해도 너무 슬프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