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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착하고 용감한 어른

by 앤디



주말에 소파에 드러누워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어떤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국민 MC가 진행을 했는데,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퀴즈를 풀어 선물을 주는 그런 프로였다. 내가 봤을 때는 한 꼬마가 진행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덤덤하게 툭툭 말을 던지는데, 그 내용은 폐부를 찌르는 말이 많아서 저 아이가 다음 질문에는 또 뭐라고 대답할까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진행자가 아이에게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아이는 "솔직하고, 착하고, 용감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순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나치게 좁은 길을 걸어온 건지 아니면 하필 나만 유독 암울한 세상 속에서 살아온 건지 나는 저 세 가지를 다 갖춘 어른을 별로 보지 못했다. 세 가지를 다 갖추기는커녕, 저 중 하나라도 되는 어른을 만나는 것도 다행이었다.
내가 만난 세상에서 만난 어른들은 주로 거짓을 말하거나 진실을 모른 체하고, 자기 이익만 계산하느라 남에게 폐를 끼친 다음, 당연히 비겁하기까지 한 그런 어른들이었다. 매일 아침 보는 뉴스에서도 그렇고, 회사에 나와서도 그렇다. 그리고 나 역시 솔직하고, 착하고, 용감한 어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래 놓고 나중에 (위에서 말했던 어른들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며 참으로 안 솔직하고, 안 착하고, 안 용감한 변명을 늘어놓을 것만 같다.


TV 속 아이가 되고 싶다는 어른이 나 역시 되고 싶었던 어른이었는지 주말 내내 저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한편, 주말에 첫째 조카와 둘째 조카를 보러 동생 집에 놀러 갔었다. 그리고는 첫째 조카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조카들의 옷을 사주고 잠시 데이트를 했다. 아직은 조카가 세 살이라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지는 못했는데, TV에서 봤던 그 아이 나이 때가 되면 한 번 물어보고는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카를 다시 동생 집에 데려다주면서 혼자 있는 올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뜻 보니 식탁에 아이 교육에 관한 책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올케의 지금 최대 관심사는 아이들 교육인 것 같았다. 현실 어른들의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이토록 빠르고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앞으로 이 아이들이 어떻게 살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올케한테 내가 지금 부모면 애들한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될지 진짜 모를 것 같다고 말했다. 올케가 언니, 정말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






다시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회사 갈 준비를 하면서 틀어놓은 뉴스에서는 요즘 한창 시끄러운 정치권 소식으로 갑론을박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솔직하지 않고, 착하지 않고, 용감하지 않은 어른들 사이에서 나 역시 그런 어른 입네 행세하러 출근을 한다.

오늘 아침은 유독 입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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