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갔다 회사로 복귀하는 길, 사무실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 간판의 한 글자, 한 글자 위로 비둘기 한 마리 혹은 두 마리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원래 나는 조류를 무서워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토사물을 쪼아대는 도시의 비둘기들을 여러 차례 본 뒤로는 거리에서 비둘기를 볼 때면 항상 도망을 친다.
비둘기도, 비둘기가 앉아있는 회사의 이름도 (나에게는) '평화'와 거리가 멀다 생각하니 두 개의 조합이 참 기묘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감히(?) 그런 말을 하는 상사도 없지만, 입사 초반 아니 (어쩌면) 그 뒤로 오래도록 몇몇 상사들이 나를 포함한 젊은 직원들을 붙잡고 하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기는 '여러분이 오래 다닐 회사'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굳이 풀어서 해석하면 당신들 스스로는 저물어가는 해니 파릇파릇한 우리가 새 바람을 불러일으켜 우리가 앞으로 오래 다닐 회사를 더 좋게 만들어보라는 뭐 그렇고 그런 의미였다.
나는 처음에 멍청하게도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었다.
(또 멍청하게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이곳은 '변화'에 관심 자체도 없는 데다가 굳이 '변경'이 필요하면 철저하게 탑다운의 방식을 고집할 뿐이었다. 그리고 10년간 회사를 다니며 지켜보니 저런 말을 했던 상사일수록 어떤 형태로든 이곳에 관여하려 하고 어떻게 해서든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분들의 행동은 그분들의 했던 말과는 달리 '여러분이 오래 다닐 회사'가 아닌 그분들이 오래 다닐 회사라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이렇게 기복 없는 생활이 가능하고, 만사가 어떻게 다 만족스럽겠어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했다가도... 천불이 올라오는 사태나 상황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주할 때면 나의 유예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된다.
실제로 요즘에는 이 화를 못 참아서 내가 먼저 내 인격을 모독하는 불상사가 벌어질까 봐 그게 제일 두렵다.
오늘도 평화롭지 않은 마음으로 사무실 창밖을 내다본다. 비가 온다. 평화의 상징이 맞는 건지 아닌 건지 헷갈렸던 그 비둘기들은 오늘은 어디에 앉아 비를 피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