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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Mar 16. 2020

절대적 행복과 상대적 불행


행복에 관해서는 나만의 주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는 반면, 불행은 늘 '상대적'인 잣대 하에서 그 양상을 달리한다. 즉, 남들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다면 그것은 내 행복의 크기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남들 행복할 때 나는 불행하다면 갑자기 내 불행의 크기는 이 세상 크기만큼이나 커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땅 덩어리는 아담하고 자리는 한정되어있는데, 능력 있고 잘난 사람이 넘쳐나 늘 박터지는 대한민국.

 남의 시선을 중시하는 풍조로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사회적, 심리적 거리가 참으로 가까운 대한민국.
 
 어쩌면 오늘 여기 산다는 건, 다른 사람의 행복과 내 불행을 비교하며 살기 십상이란 걸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부정적인 기억은 되도록 빨리 잊자 주의긴 하지만 태생이 초긍정 파워로 똘똘 뭉쳐진 사람은 아니다. 사돈이 땅을 샀다고 해서 무턱대고 배 아파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때때로 배 아픈 것을 배고픈 것만큼 못 참는 사람이기도 하다.




 
 
 작년 평일의 어느 날, 나는 연차를 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에 가서 한 전시를 보았다. 그때 나의 심리 상태가 반영된 것인지 나는 (사진으로 추정되는) 어떤 작품 앞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건 바로 비싸 보이는 고층 아파트 사이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낡은 아파트가 대비된 작품이었다.

 주변 사람 모두가 찬란한 미소를 머금고 새 소식을 전할 때, 나 혼자만 제자리를 걷고 또 걷다 못해 뒷걸음질 치고 있는 듯한 기분.

 다들 자기만의 견고한 성을 단단히 쌓아가고 있는데, (좋아하는 시의 한 구절처럼)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가 되는 그런 기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작아지는 내 모습에 한참 동안 괴로웠고, 그 기분 상태는 생각보다 꽤 오래도록 내 매일을 짓눌렀다.

 내가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지금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건 내면과 외면의 균형이 깨진 데 있다고 말했다. 물질, 바깥은 화려하고 꽉 차 있는데 안은 누추하고 허하다 보니 생기는 균열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행복은 균형을 맞추는 것, 안을 채우는 데 있다고.

 

 일상의 행복마저 작정을 해야 이룰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요즘이라 더더욱 행복이란 단어가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 것 같다.
 
 나만의 주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행복의 요소들로 나의 안을  꽉꽉 채워줘야 할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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