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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pr 20. 2020

흔들리는 몸들 속에서 네 소주 향이 느껴진 거야


 

 야근이 잦아지고 퇴근 시간이 늦어지자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술에 취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분들 대다수는 시뻘건 얼굴에 몸을 비틀비틀거리고 있어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데, 그 와중에 다 들리는 혼잣말을 하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통화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면) 술에 꽉 취한 사람들은 본인 몸을 가누기도 버거워 누군가를 해코지할 일이 적은데, 그럼에도  그 옆을 지나가는 것은 왠지 꺼려지게 된다.

특히 갑작스럽게 내 코앞까지 걸어오시는 분들을 마주할 땐 무서움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며칠 전에도 야근하고 집에 가는 퇴근길에 거나하게 취하신 분이 계셔 멀찌감치 떨어져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과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려고 힐끔힐끔거리다 보니 갑자기 19년 전 요맘때가 떠올랐다.






 빠른 년생으로 19살에 대학생이 된 나는 이 계절에 거의 매일을 술에 취해 비틀비틀거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상당히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그런 나의 대학생활을 스스로 퍽 낭만적이라고 평가했으며, 이것은 내 전체 인생에서 이때 아니면 못 누릴 대학생의 특권이라는 다소 당당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술을 먹으라고 등 떠미는 사람도 없었건만, 온갖 술자리에 끼어들어 자진해서 술을 퍼 먹고 다녔고 낮과 밤을 가리지도 않았다.

 특히 나는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술 먹는 걸 시작해, 한창 취해 들떠 있음에도 (여전히) 해가 지지 않은 그 순간을 참 좋아했다. 그것은 낮술만이 줄 수 있는 치명적인 매력이었다. 술 먹은 거 말고 한 게 없음에도 하루를 긴 게 산 거 같아 뿌듯했다.

 그리고 밤에 술 먹는 걸 시작했을 땐 해가 막 뜨기 직전의 순간을 좋아했는데, 유머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냉정하고 야박한 잣대를 갖고 있는 내가 그때만큼은 말 같지 않고 시답잖은 말에도 깔깔거렸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엔 기이한 공기가 감도는 것인지, 희한하게 이 세상 모든 말이 그렇게 우습고 재밌게 들렸다.








 (아, 옛날이여.) 이제는 술 자체를 마실 일이 거의 없고, 자진해서 술판을 만드는 일도 극히 드물다.
설사 낮술을 시작해도 (다음 날 컨디션을 걱정해) 해가 졌을 때쯤 맑은 정신이 돌아오게끔 조절을 하고, 밤에 술을 시작하면 새벽 어스름을 맞을 겨를 없이 곯아떨어지고 만다.
이십 대 직전과 사십 대 직전. 술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이토록 다른 것이 돼버렸다.
 
 그때 그 시절, 시뻘게진 얼굴과 비틀거리는 몸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어떤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을까 송구스럽다가, 그랬던 내가 오늘날 전철에서 술에 취한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났다.






제아무리 용을 써도 그때 그 기분은 안 나겠지만, 그때처럼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술에 취해 깔깔거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해 지기 전부터 내일 해뜨기 전까지...


 음...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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