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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May 04. 2020

고모와 어린이 날 선물 고르기


 어린이 날이 다가와 우리 집안의 어린 자들인 조카 두 명의 선물을 사러 갔다. 나로 하여금 지독한 조카앓이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준 4살짜리 첫째 조카와 함께 갔다.
좋다 싫다 표현이 자로 잰 듯 정확한 이 녀석은 요즘 드레스와 핑크에 빠져있다. 다들 한창 그런 시기라는데 육아 경험이 없는 나는 조카가 그렇다는 게 무척 신기하다. 울 엄마가 안 사주신 건지, 어린 나는 그렇지 않았던 건지 내 어릴 적 사진에는 핑크와 드레스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절 실제 넉넉지 않았던 살림과, 그 누구보다 아끼는 것에 능했던 엄마는 어린 나에게 누가 봐도 얻어 입힌 듯한 옷으로 (남아인지 여아인지 알 수 없는) 유니섹스적 패션을 연출해주셨다.

 지금도 패션에 돈을 쓰지 않으시는 엄마는 옷이나 신발 가방 사는데 큰돈 쓰는 걸 이해하지 못하신다. 손녀들에게 필요한 걸 시원스럽게 사주시는 것 대비 엄마가 조카들에게 옷을 사주는 건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다.






 여하튼 나는 이런 엄마 밑에서 어떤 한(?)이 맺혔던 건지 첫째 조카가 올케 뱃속에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 옷을 사다 날랐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반드시 유아의류매장을 들리는 코스를 넣을 정도로 어느 나라를 가든 꼭 조카의 옷을 사 왔다. 그리고 그 옷들이 조카에게 찰떡같이 어울렸을 때 나이 많은 미혼 고모로서 느끼는 큰 기쁨은 상상보다 컸다.  

 이제는 조카가 본인 취향 내세울 정도로 큰 바람에 되도록 같이 가서 고르고 있다. 난 주말 차로 5분 거리인 집 근처 백화점에 조카와 단둘이 갔다. 정작 나는 백화점에서 옷을 산지가 언제였는지 까마득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조카와 손을 잡고 스윽 둘러보는데 못 보던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디자인들이 많아서 내가 더 신이 났다. 조카에게 이건 어때 저건 어때 묻는데 '이거 싫어!'라는 단호한 의사표현이 돌아왔다. 결국 핑크와 드레시함이 콜라보된 원피스를 대령하고 나서야 '이거 좋아'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곧 첫 돌을 맞게 될 둘째 조카가 첫째 조카와 옷을 맞춰 입으면 정말 귀여울 것 같아 아직 걷지 못하는 둘째 조카의 원피스도 같은 디자인으로 골랐다. (한 번 겪었다고) 솔직히 둘째 조카에게는 첫째 조카 때만큼 열정적으로 챙겨주질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나온 김에 둘째 조카의 옷들을 주워 담았더니 내가 잠정적으로 생각한 예산에서 많이 초과되었다. 내가 더 흥분해서 고르는 바람에 미쳐 가격표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처음 보는 그 브랜드는 가격대가 있었던 것이었다.

계산을 해주시는 점원분이나 선물을 받은 올케 모두 나에게 이건 고모니까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매일 많은 걸 챙기고 사줘야 하는 엄마가 아니니까, 내가 생각해도 이건 고모라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의 영역인 것 같긴 했다.

 나중에 올케 말이 그 원피스를 받은 날부터 첫째 조카가 3일 내내 그것만 입었다고 하니  그 귀여움 때문이라도 고모로서 지갑을 안 열기가 힘이 든다.

 월급의 효용성에 (먹고사는 것뿐 아니라) 이 또한 내게는 무시할 수 없는 큰 부분이라는 걸 조카들의 선물을 결제하면서 새삼 또 느꼈다. 이제 회사를 두고 딴 맘먹은 고모는 조카들 덕에 다시 한번 정신을 확 차려본다. 월급과 작별한 상황에서도 고모니까 가능한 일들을 놓치지 않게끔 잘 준비하자고 말이다.

 5월은 진짜 푸르구나. 우리 집 귀염둥이들과 모든 어린이들이 잘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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