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 없이도 웃음이 실실 새고 발걸음이 가벼운 금요일 오후였다. 거기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칼퇴 각을 맞추고 컴퓨터 전원을 끄려는데 회사 메신저로 최대리가 말을 걸어왔다.
“투 대리 프로젝트 글로 이번에 '꼰대'에 대해 써보는 건 어때?”
꼰대? 금요일 오후와 어울리지 않은 소재라고
생각했다. 주말에는 철저하게 회사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회사와 연관검색어 관계에 있는 꼰대에 대해 고민해야 하다니. 갑자기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갑자기 금일 접수된 문서가 단 하나도 책상 위에 올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꼰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온종일 내 일 쳐내느라 인식도 못 하고 있다가 순간 문서 접수 담당하는 직원이 괘씸하게 느껴졌다. 이제 막 수습을 떼고 바뀐 업무분장으로 정신없던 신입사원이 요 며칠 문서 전달이 늦어졌는데 이번엔 아예 전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아, 저번에도 좋게 말한 것 같은데...
선배 말이 말 같지가 않나.’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정색을 한 다음,
“금일 접수된 문서는 바로바로 담당자한테 전달해야 하는 거야.” 두 번씩이나 강조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데 기분이 묘했다.
꼰대 이야기 찾으러 회사를 떠올릴 것도 없이, 생각보다 꼰대는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 Latte is Horse.(나 때는 말이야.)
사실 요즘 회사가 평소보다 일이 많은 편이다. 모든 직원이 바쁘다고 체감하고 있으니 일이 서툰 신입사원은 더 정신이 없을 것이다. 불과 3달 전만 해도, 일만 주십시오 다 해내고 말겠습니다로 보였던 신입사원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바야흐로 9년 전, 신입에 지점 막내였던 나도 엄청 바빴던 시절이 있었다. 사수와 거의 매일 둘만 남아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을 하고 집에 가던 때가 있었다. 그 와중에 왜 이것밖에 못하냐는 닦달마저 들은 날에는 사수와 둘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을 마셨다. 당연히 술은 밤 10시까지 일을 마치고 난 뒤에야 마실 수 있었다.
초심을 잊지마세요. 처음처럼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신입사원들에게 나의 그 시절 고군분투에 대해 작정하고 털어놓은 적은 없다. 사실 위험한 순간들이 더러 있었다. '나 때는 말이야'의 나를 발음하려고 입을 움찔거릴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시계를 바라본다든지, 커피를 타는 식으로 나를 환기시켰다. 그래도 못 참겠으면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지 않는 수작을 부렸다. 꼰대의 장광설처럼 느껴지지 않게 대화 중간중간 이따금 씩 툭. 내 경험과 내 생각을 후배 직원들에게 투척했다.
'어머 애들아 나는 꼰대 아니야.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 안 했잖니. 그리고 내 말은 아주 간단하잖아. 그지?'
참견하면서 쿨한 선배 이미지까지 챙기려는, 진화된 신종 꼰대가 돼가는 중이다.
- 꽃을 좋아하는 꼰대
동기들이나 후배 직원들 중 유독 상사나 선배 직원들에게 싹싹한 친구들이 있다. 당연히 회사 내에서 좋은 이미지를 갖는다. 특히 직급이 위로 올라갈수록 이런 양상은 더 과열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직접적으로 확인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후배 직원들과 격 없이 잘 어울려 친하게 지내는 과장님한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저 위에까지 안 올라가 봐서 진짜 모르겠는데. 정말 저 자리 가면 ‘저렇게’ 하는 후배 직원이 좋을까요?”
과장님이 해맑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응. 나라도 좋을 거 같아.”
비교적 꼰대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과장님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대화를 못 이어갔다. 과장되시고 몇 년 지나더니 변하신 건가. 왜 대다수가 결국 저런 양상으로 수렴될까 신기했다.
꼰대지만 꽃은 좋아해
회사 후배 직원 중에 나와 생일이 같은 직원이 있다. 같이 일도 안 하던 때인데, 나에게 생일이 같은 기념으로 함께 생일 밥을 먹자고 제안해 왔다.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고 친절한 친구라 직원들이 농담으로 영혼 없이 행동 좀 하지 말라고 놀려대는 그런 후배다. 생일이 같은 것도 신기하고 생일 즈음엔 기분이 좋아져 있기 마련이라 후배가 좋아하는 메뉴를 골라 밥을사주었다.
헤어질 때쯤 후배가,
“대리님, 내년 생일에는 멕시칸 요리 먹으러가요.”
그러길래 지나가는 말이겠거니 하고 “그래.” 대답했다.
1년이 지나 올해도 또 생일은 찾아왔다.
후배는 정확히 멕시칸 요리를 언급하며 회사 근처 멕시칸 요리레스토랑까지 검색해 내게 생일 밥 약속을 받아냈다.
영혼 없게만 봤는데 제법 일관성이 있는 친구로군.
한 편 회사 내에서 내가 영양가 있는 선배도 아닌데 굳이 나에게 왜 그러지 생각하면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후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식당에 먼저 자리 잡고 앉아 있는데 5분 뒤에 후배가 작은 꽃을 들고 들어왔다.
그 꽃은 내 것이었다.
“뭐야. 이건. 오버스럽게. 나한텐 이런 거 안 통해. 어쨌든 고마워.” 툭 내던지고 바로 밥을 먹었지만 속으로는 엄청 기분이 좋았다.
사실 후배의 정확한 의중은 모른다. 후배로서 개인적으로 나를 따르는 걸 수도 있고, 야심 있는 후배의 직장생활 큰 그림일 수도 있다.
다만 정말 ‘이렇게’ 하는 후배 직원이 좋은 거냐고 과장님께 질문했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