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디 Jun 03. 2020

퇴근길, 3분의 쉬는 시간


오늘도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늘 타던 칸에 몸을 실으면, 늘 비슷한 시간에, 늘 내리는 칸 앞으로 나를 내려준다. 교통체증, 주차공간 등을 염려할 필요도 없고 출퇴근하는데 이만한 교통수단이 어디 있을까 싶다가도 여전히 나는 지하철 타는 것을 피하고 싶다.






지하철 하면 나는 삭막하고 어두컴컴한 바깥 풍경부터 떠오른다. 그 풍경을 보는 대신 책을 봐도 되고, 핸드폰으로 뭘 할 수도 있지만 일단 뭔가를 타면 밖을 쳐다보는 버릇이 있다. 이런 탓에 (타는 순간 눈은 밖으로 가 있는데 뵈는 것이 없는) 지하철은 타자마자 답답함부터 느끼기 일쑤다. 유난스러울 정도로 온갖 풍경이 건조하고 딱딱하게 보였던 건 그 길이 출근길인 탓도 크겠지만, 여하튼 지하철을 타면 얼른 내리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리고 내가 지하철 타는 걸 싫어하는 이유에는 수많은 계단이 한몫한다. 지하철 역에도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그건 이용하셔야 할 분들과 이용 목적이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헤맨다.


 에스컬레이터를 용케 찾아냈다 해도 어쨌든 지하철을 타면 내 두 발로 계단을 밟아야 하는 순간이 꼭 온다.

 하필 내가 출근길에 거쳐가는 승하차 역은 지하 철로가 깊이 설계되어 있어 마주하는 계단마다 어마 무시하다. 매일 오고 가는 길이라 당연히 내게 맞는 최적의 동선을 짜둔 상태지만 어쨌든 계단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이놈의 만성피로가 다 운동 부족 탓이라며 생활 속 움직임을 실천해야지 했다가도 희한하게 그 움직임을 계단에서 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날 나는 여기저기서 추천하는 재테크 입문서를 읽다가 계단참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계단참'은 상층과 하층을 연결하는 계단 도중에 폭이 넓게 되어 있는 부분을 말한다. 계단의 방향을 바꾼다든지, 피난과 휴식 등의 목적으로 설치된다고 한다.


 내가 출근길에 거쳐가는 여러 계단 중의 한 계단참에서도 실제 노숙자 몇 분이 늘 누워계시거나 앉아계시기 때문에 나에게 계단참은 '휴식'의 이미지가 강하다. 출퇴근 길에 스쳐가는 곳이라 늘 허겁지겁 지나가느라 바빴는데 어제 퇴근길과 오늘 출근길에는 그 계단참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어딘가로 '빠르게 올라가기' 위해서, 혹은 어딘가로 '무사히 내려가기'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는 것 말고 평평하고 널찍한 저 계단참에서 멍하니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계단에서 오르락내리락 지치면 쉬라고 있는 계단참인데 왠지 거기에 서있거나 앉아 있는 건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삶이라는 계단을 오르고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가 돼버렸다. 나만의 계단참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좀 앉아 있는 시간이 절실하면서도 그런 멈춤에 대해서 나 스스로부터 냉정하고 인색하다. 계단을 올라가든 내려가든 뭐라도 해야지, 가만히 있다가는 내 세상이 영영 저 계단참 크기로 쪼그라들 것 같은 불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 출근길에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있다 퇴근길에는 잠깐 저 계단참에 멈춰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의 시간만큼만 머물러 있어 보기로 말이다.


 혼밥처럼 내게는 또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혼 계단참.

 

 

매거진의 이전글 나 혼자 산다를 보다 기안 84에게 사과를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