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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09. 2020

1일 1 서태지와 아이들


 깡의 기세가 폭발적이긴 한 것 같다. 유튜브를 전혀 하지 않는 나조차 여기저기서 1일 1 깡이라 하길래 정기구독 중인 뮤직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뮤직 비디오 영상을 찾아보았다. 2017년에 나온 노래라는데 나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 화려한 조명이 아닌 화려한 영상, 가수 비의 멋진 퍼포먼스까지. (처음 본 날 단숨에 2 깡을 해버렸다...) 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나는 나쁜 남자 시절부터 그의 춤사위가 좋았다.

 




 사실 요즘 나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혼자 열광하고 있는 음악이 있다. 그건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내가 한국 나이로 두 자리가 되었을 때 데뷔했다. 그때의 나는 학교 여름 수련회 장기자랑에서 두 명의 언니들과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에 춤을 췄다. 갑자기 손발이 오그라들고 머리가 쭈뼛서는 느낌이 드는데, 그 무대에서 나의 역할은 자그마치 서태지였다. 아마도 키가 제일 작고 어렸기 때문에 가운데 세워서 (실력이 아닌) 앙증맞음으로 밀고 나가려고 했던 언니들의 고도의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그 장기자랑대회에서 수상을 했는지 못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태지님과 비슷하게 보이려고 어떤 모자를 썼다는 것, 난 알아요~ 이 부분에서 팔 하나를 번쩍 들어 시그니처 춤 동작을 하긴 했다는 것이다.

 




 그의 노래를 많이 듣긴 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냥 아쉽다 정도였지, 충격을 받거나 그런 것도 없었다. 창작의 고통이 컸다는 그의 기자회견 장면이 전히 머릿속에 또렷한데 이 일이 벌써 20년도 훌쩍 넘은 얘기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러던 내가 서태지의 아이들 노래를 불현듯 떠올려 매일 출근길마다 듣기 시작한 것이 한 두 달 정도 되었다.  

 주로 무한 반복해서 듣는 노래는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 컴백홈이다.  매번 들을 때마다 질리는 법이 없고 전주부터 마음이 쿵쾅거린다. 오랜만에 다시 들었던 첫날 스스로에게 놀랐던 건 내가 랩이든 노래든 그 가사를 줄줄이 외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그의 음악을 좋아했구나. 그때 깨달았다. 한 개인을, 한 집단을 출생연도 하나로 무슨 무슨 세대로 묶어대고 명명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요즘 인기 있는 노래들에서는 절대 못 느끼는 감성과 카타르시스를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에서 느낄 때마다 아 나는 그 세대였구나 실감하기도 한다.


 





 오늘은 샤워를 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를 들었다. 됐어 (됐어) 이제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이 부분을 들으며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난 지가 언제인데 나는 왜 여전히 이 부분에서 이글이글거리나 생각했다. 곱씹으면서 들어보니 교실이 사무실로만 바뀌었을 뿐, 교실 이데아의 풍경은 현실의 내 처지와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노래 중반쯤엔 굵직하고 엄격한 목소리가 나를 꾸짖기 시작한다.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이쯤 되면 나도 모르게 아, 태지님. 정녕 당신은 천재셨군요.라고 매번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만다. 이 노래는 내가 본격적인 제도권 교육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국민학교 6학년에 나온 노래다. 그때도 나는 생각했었다. 근데 왜 노래 제목이 교실 이데아지? (좀 창피하지만) 교실이 '데아' 음... 뭔가 사투리스러운 어미인가? 이렇게 생각했다가, 아 뭔 깊은 뜻이 있겠지 하면서 넘어갔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게 몇십 년인데 갑자기 오늘 불현듯 아 혹시 교실 이데아의 이데아가 플라톤의 그 이데아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알게 되었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땐 내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긴 했지만 그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 못하고 마구잡이로 노래를 들었나 싶어서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태지님의 노래 가사에 담긴 세계관과 사상을 분석한 평론 찾기가 시급한데 구할 수 있을까. 별의별 생각하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들으면서 출근했다.


 사무실에 다다를 때쯤, 환상 속의 그대 태지님의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건다.



그대의 환상 그대는 마음만 대단하다
그 마음은 위험하다
자신은 오직 꼭 잘 될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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