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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l 22. 2020

영화 반도의 교훈

누가 좀비이고 누가 인간인가


주말에 영화 '반도'를 보았다. 올해 들어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부산행을 재밌게 봤는데, 그땐 좋아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서 더 좋았던 것이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는 사실 별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극장에서 나오는 길에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던 많은 부분이 영화를 통해 건드려졌음을 깨달았다.

 몇 주 전에 영화 관련 수업을 듣다가 강사님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강사님은 그 날 반도 시사회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대적인 상황과 좀비물의 상관관계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주셨다. 이미 좀비물이 크게 히트를 쳤던 다른 나라의 경우를 예로 들어주시며, 사람들이 세상을 헬이라고 느끼면 느낄수록 좀비물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다. 왠지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산행 뒤 4년이 지난 시간, 대한민국은 폐허가 되었다. 영화는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는 세계에서의 돈을 찾으러 들어가는 미션에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 예고에서 좀비가 우글대는 곳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을 암시했을 때, 막연히 사람을 구하러 가나보다 생각했었다. (외부에서는 당연히 생존한 사람이 없을 거라는 것을 전제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아닌 돈을 구하러 간다는 설정이 오히려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좀비 대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과의 구도가 부각된 점이었다.

 4년이란 세월 동안 인간성을 지키며 살아남은 인간은 좀비들의 특성을 간파해서 자신들을 방어하고 있었고, 인간성을 상실한 다른 편의 인간은 좀비들의 특성을 이용해서 자기와 같은 인간과 좀비를 숨바꼭질이라는 게임으로 즐기고 있었다.

어둠에 약하고 소리에 민감한 좀비들을 몰고 가기 위해 나이트클럽의 요란스러운 홍보차가 등장했을 때라든지, 631부대가 숨바꼭질 게임을 즐기는 장소가 클럽의 구조를 띄고 있는 점이라든지, 게임에 이용되었던 들개(인간)가 살려고 허겁지겁 에스컬레이터로 뛰어올라가는 장면에서는 내가 이입해야 할 대상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좀비인 건지 살려고 발버둥 치는 들개인 건지 뭐가 옳고 그른 건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는 631부대의 부대원인 건지 몹시도 헷갈렸다.


 한껏 고도화되어 잘 보이지 않았던 세계가 철저하게 무너지고 나니 인간 군상에 따라 어떻게 삶을 대처하고 어떻게 뻗어나가는지가 확연히 보였는데, 모두 다 좀비 바이러스가 없는 현실에서도  마주칠법한 캐릭터들이었다.
 현실에 미쳐서 바닥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는 황 중사와 서 대위 같은 인간들도 있고, 무언가를 끝까지 지키고 시도하는 민정의 가족과 김 노인 같은 인간들도 있고, 상식(?)과 시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끝내는 변화하는 정석 같은 인간은 어디에나 있다. 다만 어떤 부류가 더 많고 적냐는 차이일 뿐이다.






 영화의 끝자락 아이들만큼은 이런 세상에서 안 살게 하려는 김 노인의 무모한 무전 시도가 결국 응답을 받았다는 교훈적인 설정이 너무 영화적이라 실망했지만, 황 중사가 본인이 갖고 놀던 좀비 떼의 공격으로 끝을 맞는 장면과  서 대위가 딱 자기 같은 인간 총에 맞아 죽는다는 설정은 영화적이어도 통쾌했다. 고생 끝에 복이 온다는 희망은 버린 지 오래지만, 지 살자고 남을 짓밟거나 폐 끼치는  인간들의 끝이 처참하기를 바라는 건 아무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민정이 가족처럼 살기가 점점 힘든 세상이다. 그래도 화려한 조명과 현란한 소리만을 쫓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좀비 떼는 되지 말자 생각한다. 구한답시고 설치다가 내가 먼저 미쳐 날뛰는 631부대도 되지 말자 생각한다.
 
 갈팡질팡하다가도 때때로 상식이란 것에 물음표를 던지고, 시도라는 것에 밑줄 그을 수 있는 정석 같은 사람이 돼보자 생각한다.

 하필 주인공 이름이 '정석'인 것은 우연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억지스러운 연결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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