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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Sep 01. 2020

코로나 시대의 추억팔이


코로나 확산이 다시 심각해지면서 내가 받는 문자에 취소, 연기, 변경, 환불 이런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입장할 때마다 체온을 체크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서 들었던 수업도 처음에는 연기되었다가  결국 zoom수업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내게는 두 번째로 전환된 zoom 수업이었는데, 나는 그냥 이 수업을 포기하기로 맘먹고 접속하지 않았다. 한 번 경험해본 zoom 수업에서 유독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고 화상수업의 피로도를 몸소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인강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 더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벌어진 일들을 통해 강사님과 수강생, 수강생과 수강생 등 한 공간에 모인 사람과 사람 간의 에너지가 수업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였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언제 다시 그것이 가능해질지 모르겠지만... 마스크 없는 강사님의 입에 집중을 하고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공부하던 풍경이 무척 그립다.

 





 이것과 함께 내가 그리운 것은 아무래도 공간에 대한 자유로운 방문 그 자체다. 나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먹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직접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라 남이 먹거나 다른 사람이 간 것을 보고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지금, 내가 방문했던 곳에서 내가 먹었던 음식 사진들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지나간 내 경험을 반추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이 아니다 보니 평소 나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후배들이 약속 장소를 정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의 검색 능력을 내 것보다 신뢰하기도 하고, 내 것과는 뭔가 다른 그들의 pick과 갬성을 경험하는 것이 흥미롭고 재밌다.

 

 후배의 검색으로 친한 동료들과 방문한 곳은 고기가 주 메뉴인 레스토랑이었다. 겉모습이 영락없는 컨테이너 창고인 이 곳은 들어가면 반전이 있는 곳이었다. 츄리닝에 슬리퍼 질질 끌고 들어갔다가는 어 내가 잘못 들어왔나 할 수 있는 인테리어라고 해야 하나. (도착하고 나서 검색해보니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레스토랑이라 사람들은 다 알고 갈 것 같은데, 나는 아예 사전 정보가 없었다...) 건물 밖으로는 창문도 없어서 레스토랑의 내부를 전혀 상상할 수 없었는데, 겉과 속이 완전 다른 콘셉트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그리고 스테이크 맛도 썩 괜찮았다. 스테이크 코스를 시켰는데 마지막엔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이스크림 위에 얹어진 보랏빛 알갱이가 꼭 복분자 같아서 아이스크림에 복분자가 있네 하고 큰소리로 말했는데, 서빙해주는 직원분이 이건 캐비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캐비어는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머쓱해진 기분 탓인지 몰라도 캐비어는 아무 맛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비싼 음식은 내 입맛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1차로 무엇을 먹든지 간에 후식의 배는 언제나 따로 존재하는 법, 밥을 먹고 우리는 후배가 검색한 2차 장소로 향했다.  엄청난 규모의 카페였고, 그 크기에 걸맞게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참 줄을 서서 빵과 음료를 주문했다. 음료는 그저 그랬는데 빵은 맛있었다. 빵의 종류도 많은 편이었는데 시간만 허락하면 하나하나 다 맛보고 싶었다. 빵을 어느 정도 먹고 나니 그제야 카페 내부의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낯설지가 않고 꼭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검색해봤더니 꽤 인기 있었던 드라마가 촬영된 장소였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남자 주인공에게 신기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되었던... 이 카페에서 남녀 주인공이 운명적으로 마주쳤던 한 장면이 머리를 스치었다.




 레스토랑에서, 카페에서 찍었던 음식 사진과 공간 사진들을 무심히 툭툭 넘겨 보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서글퍼졌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어서 소중한지도 몰랐던 일상의 장면들을 언제쯤 자유롭게 누릴 수 있을까. 마스크 쓰는 건 순식간이었는데, 그것을 벗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재테크 책을 읽으며 종잣돈 모으기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아쉬워했다가, 이러기 전에 그렇게 여행을 안 다녔음 어쩔뻔했지 하며 아찔해하기도 한다.


아 옛날이여,
아니 불과 작년이여,

그립고 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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