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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Sep 25. 2020

소개팅이 쏘아 올린 공



이번 주말 오랜만에 소개팅을 한다.


나이 들면서 소개팅의 기회 자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는데, 어쩌다 하게 될 것도 매번 하지 않겠다 했었다.

몇 번 안 해본 소개팅에서 좋은 기억이 없기도 했고, 그 특유의 어색하고도 어색한 분위기에서 매번 비슷한 패턴의 대화를 주고받 것이 내게는 엄청 큰 고역이었다.

 

굳이 분류하면, 나는 소위 자만추다. 하지만 실제 내 루틴은 자연스러운 만남은커녕 인위적인 만남도 힘든 게 사실이다. 지독한 이별 후에 외롭고 쓸쓸할 때면  캐리어 질질 끌고 훌쩍 떠나버리곤 했었는데,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지금 나의 심리 상태는 가을을 좀 타는 것도 같고, 여행을 못 가서 무지 답답한 데다가, 친한 친구들 99%가 아기 엄마라 몹시 심심한 그런 상태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팅 얘기가 나왔을 때 (남자를 만나고 싶다기보다는) 새로운 사람, 새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하겠다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낼모레 마흔이 소개팅을 대처하는 자세라고 하기에 한심하고 부적절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솔직한 심정이 이렇다.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려 할 즈음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어 연락처를 교환하고 3주가 지난 지금에야 보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약속 날짜가 정해지고 나는 저녁을 굶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한 기간이지만... 그 왕성했던 식욕이 깊은 후회들과 함께 사라졌다. 옷장을 점검하고 폭풍 쇼핑도 했다. (결국 최종 코디는 입던 옷로 결정했지만) 소개팅 덕에 새 옷들이 엄청 생겨 짧은 가을이 든든해졌다. 화요일엔 염색을 했고, 목요일엔 네일을 받았다. 소개팅 당일에는 메이크업과 헤어 예약까지 했다.

소개팅을 앞두고 내가 단 한 번도 벌인적 없었던 행동들이다.


만날 분의 회사 위치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 출퇴근길 똑 떨어지게 잘 꾸미고 다니는 직장 여성분들을 매일 보시겠구나.  방치했던 나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소개팅 하나에 이런 벼락치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웃기긴 하는데, 웬일인지 이런 내 모습이 싫지 않다. 로또를 사본 적은 없지만 복권을 사놓고 당첨될걸 기대하는 설렘이 혹시 이런 걸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게다가 이번 소개팅은 마스크라는 상상치 못한 아이템의 등장으로 (그 결과가 어떻든)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이런 시국에 젊은 남녀들은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까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그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비록 하루로 끝날 만남이어도 좋은 사람과의 대화는 좋은 기억을 남긴다. 어도 시간 버리지는 않았잖아, 단 내가 바라는 건 여기까지.


로맨틱 장르가 조금만 섞여도 피식하고 의도적으로 멀리했었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은 두배로 크다는 것도 경험칙을 통해 너무 알고 있는데.
 
 오랜만이라 그런 걸까. 

 주책맞게 살랑거리는 마음 감출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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