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이 저만치 멀어졌다

by 앤디



저번 주 금요일, 어쩌다 보니 내가 참가한 공모전 3개의 발표가 있었다. 원래 발표가 그날인 것도 있었고, 결과 발표일이 연기된 것들도 있었다. 최우수는 언감생심이라도, 1군데에서 작은 상이라도 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했었다.


그런데 결국 나는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다.


아닌 척하려고 해도 실망감을 감출 길이 없었고, 세상의 모든 거절은 언제나 그렇듯이 쓰리고 아팠다.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은 것도 아닌데, 한번 가라앉은 기분은 좀처럼 회복되질 않았다. 헛헛한 마음에 친한 지인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친한 언니가 직장 다니면서 공모전을 3개나 참가한 게 대단하다며, 지금 분명 내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과정일 거라고 위로해주었다.

사실 대단하단 말을 들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공모전이 아닌 데다가, 내가 진정 최선을 다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어서 괜히 머쓱해졌다.


회사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회사가 아닌 다른 경로로 먹고살고 싶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내 재능과 내 위치에 대해 뒤늦게 확인 중인 건 사실이었다. (그 여러 확인 방법 중 하나가 공모전이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에서 작은 상이라도 받으면서 세상으로부터 잘했다는 칭찬을 듣고 싶은 아이 같은 마음도 있었다. 꽁꽁 숨겨둔다고 숨겼지만 어른인 나에게도 칭찬은 절실하고 고픈 것이었나 보다. 아주 사소한 성취에도 감격해주시는 부모님의 사랑, 더딘 성장을 격려해주시던 스승님의 존재가 새삼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했는지 마흔이 돼가는 시점에 깨닫고 있다.

다른 어른들은 얼마나 많은 칭찬 속에 둘러싸여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면서 나는 누군가로부터 칭찬받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오히려 알 수 없는 평가기준과 대비하기 힘든 주변 시선이 늘어난 탓에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애썼는데도 자꾸만 헤매는 느낌만 들었다. (비단 공모전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허들을 통과하지 못할 때면, 다 내가 다 부족해서지 말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부족한지가 알고 싶었지만 안 되는 것에 대한 합리적 짐작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어른들은 숫자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어린 왕자의 문장은 정말이다. 숫자를 좋아하지 않아도, 나 역시 숫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수치에 집착하고 숫자를 들먹거리는 것으로 어른의 완성도를 따진다면 나는 제법 어른인 편이다. 나의 성과든 남의 성과든 보이고 만져지는 것으로 증명되야만 신빙성 있게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보이고 만져지는 성과는 모두 숫자였다.

요즘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전망하는 책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어쩌다 나도 공짜로 책이 생겨 제이슨 솅커의 코로나 이후의 세계란 책을 읽었다. 저자는 스타트업의 미래에 대한 내용에서 스타트업계는 앞으로 '수익과 현금 유동성'이 '성장'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가 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스타트업 종사자는 아니지만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비기너로서 이입이 되었다. 물적으로 만져지기 힘든 성장보다, 결국 또 수익과 현금 유동성이 앞서는 것이 실망스러웠지만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모르는 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종이를 꺼내 나의 회사생활 10년의 성장률과 수익률에 대한 그래프를 그려보았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 그렸는데, 웬일인지 종이로 쉽게 옮겨지질 않는다. 오랜 시간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도 있었고, 도대체 우상향인 적이 한 번은 있었던가 하는 것도 있었다.

음... 아무래도 칭찬받기는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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