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오늘도 인증숏 찍느라.

by 앤디



실로 오랜만에 KTX를 탔다. 대구에 출장 올 일이 있어 새벽 4시 30분에 기상했다. 인천 집에서 광명역까지는 사실 차로 금방이지만, 출근시간의 교통체증을 우려해 서둘렀더니 기차 출발시간보다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사무실이 아닌 건 좋았는데, 놀러 가는 길이 아니어서일까. 한적한 기차역에 들어서자마자 피로함이 몰려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한 주의 온갖 피로와 독이 쌓인 목요일이었다.

얼른 기차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려 좌석을 확인하고 몸을 푹 기댔다. KTX는 약 한 시간 반 뒤에 나를 대구로 데려다줄 것이다. KTX를 탈 때마다 신기하고 놀라는 지점이다.


비행기는 창가에 앉아도 보이는 건 하늘과 구름뿐이지만, 기차는 내 이동이 실시간으로 눈에 보인다.

나무가 지나가고, 강이 지나가고, 논이 지나가고, 산이 지나간다. 나는 그저 편히 앉아 창밖에 시선을 두면 될 뿐이다. 일상에서는 내 몸 하나 한 발짝 옮기는데도 온갖 수고로움과 강한 의지가 필요한데 그에 비하면 기차에서의 여정은 참 은혜로운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졸다가 음악 듣다가 하다 보니 어느덧 대구에 도착했다. 내 생애 세 번째 대구 방문이다. 첫 번째 방문은 대학시절 방학 때였다. 선배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대구가 고향인 동기를 만나러 와 술을 마셨다. 야밤에 고속버스를 탔고, 마중 나온 동기가 안내하는 술집에서 고갈비에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두 번째 방문은 오늘과 같은 회사 출장 때문이었다. 대구법원에 가기 위해 동대구역에 그때 처음 와봤고, 대구 지하철과 대구 버스도 그때 처음 타봤다. 업무만 보고 왔다가느라 기차역 근처에서 간단히 요기를 때웠었는데 그때 먹은 반월당 고로케가 맛있어서 오늘도 사 먹었다.




기관을 방문해 용무를 마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왔다가, 일을 다 마치고 다시 동대구역으로 돌아오니 낯선 장소에서의 설렘이 요동쳤다. 기차 출발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대구 방문 인증숏을 찍었다. 때때로 나는 이런 식의 노골적인 인증숏 찍는 것을 좋아한다. 심혈을 기울여 더 좋은 각도를 잡고 싶었지만, 촌스러운 행동인가 싶어서 얼른 찍고 돌아섰다.


대구 체류시간을 따져보니 약 세 시간 남짓, 사실 이 정도면 대구 방문이 아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준인데 그래도 인증숏을 남겼다. 일 때문에 와서 아쉬운 마음에 한 행동이었지만, 매사 이런 식으로 겉만 찔끔찔끔 맛보고 빈약한 인증숏을 남기면서 뿌듯해하진 않았는지 찔리기도 하였다. 어차피 해외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지금, 이렇게 감질나게 왔다 갔던 지역을 중심으로 도장깨기 국내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증숏을 찍으며 사실 또 한 번 일에 대한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매번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냐마는 오늘 출장은 사무실을 벗어났다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의미도 찾기 힘든 일이었다.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일일 줄 알고 자처했던 선의는 공중으로 흩어져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더딘 일처리 과정에 영혼이 탈탈 털리었다. 언제부터인가 퇴근길에는 항상 이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온종일 뭘 하다가 집에 가는 걸까






이렇게 일하면서 돈 버는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지, 그동안 무슨 의미에 경력까지 챙기길 기대했던 건지 모르겠다. 잠시 스치는 곳에서 찍은 인증숏처럼 연속성 없고 깊이 없는 일에서 나는 직장이 있어라는 인증숏만 수백 장 찍으며 안심했다. 기대와 현실은 이렇게 늘 비껴가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스친 대구는 반가웠다.


돌아오는 기차를 타며 다음에는 꼭 사적인 방문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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