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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l 30. 2020

10년째 이상한 손님


한동안 (아니 어쩌면 최근까지도) 이상한 본전심리에 사로잡혀있었다.


회사에 대한 미련은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직장인으로서의 10년 생활에 대해서는 자꾸만 미련이 생기었다. 누군가 나에게 직장인 생활 10년 동안 뭐하셨어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받지도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찾아 헤맸다. 뭐가 그리도 분하고 아쉬웠던 건지 변태스러울 정도로 이 질문에 집착했고,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앞만 보고 달려도 부족할 시간에 지나온 세월들을 촘촘히 복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10년 동안 일해서 번 '돈'으로 어찌어찌 뭘 한 건지는 알겠는데, 일 그 자체로는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작년부터 읽기 시작한 신문에서 회사와 관련된 기사나  회사와  비슷한 업을 하는 다른 기관 및 회사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일일이 스크랩을 해보았다.

평소에는 사무실에서 주어진 일만 쳐내기에 급급하니깐  이렇게 하면 내가 못 보던 뭔가가 보이면서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렇게 스크랩을 하면 할수록 나는 더 허탈해져만 갔다. 언론에서 비치는 일과 실제 나의 일과의 괴리감은 점점 더 크게 느껴졌고,  다른 기관과 회사에 대한 기사를 봤을 때는 위화감이 들었다. 그들의 뉴스에서는 조직의 변화가 보였고, 발전을 위한 준비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국 음식을 파는 식당에 와서 여기는 왜 책을 팔지 않냐고 따지는 이상한 손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결론을 막 지으려던 참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와중에 위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저번 주에 있었던 지점장과의 면담에서 풀리었다.

심각하게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한 마리의 존재와 그것을 하염없이 묵과하는 지점장 등등 사무실 돌아가는 행태로 힘들었던 지점 직원들이 이달 초 인사 담당자와 면담을 했고, 노조위원장과 면담을 했다. 그리고 지금껏 우리가 했던 모든 말을 사무실 벽 보다도 이해 못한 지점장이 직원과의 개별 면담 지시를 받고 한 명씩 면담을 한 것이었다. 내가 이틀간 휴가를 간 동안 면담이 진행되어, 나의 면담은 가장 마지막에 진행되었다. 솔직히 나는 이제 면담을 하든 말든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무엇을 한다 한들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 뻔했기에 어차피 내 입과 마음만 아플 뿐이란 걸 잘 알았다.


 다만 이전과 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는 예전보다 훨씬 담담한 어조로 제법 솔직하게 내 맘을 표현할 경지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수위조절이 그렇게나 완벽했던 건지 지점장이 내 말이 어렵다고 했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당신이 일도 잘 모르고, 리더십은 커녕 지점 관리능력이 전무하며, 출근해서 퇴근까지 꽃처럼 앉아 대체 뭘 하다가는지 알 수조차 없는데 다른 직원들이 당신 연봉은 회사 내 다섯 번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쑥덕거리고, 회사는 화룡점정 그런 당신한테 무혈 승진을 시켜 지점장이라 부르라 하니 나는 이 일련의 모든 상황으로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고 소리쳤으면 알아들었을까 싶어서였다.


그냥 너무나도 지친 나머지 나는 두 가지를 말하였다. 요약하면 나는 퇴사를 생각할 정도로 힘이 들고, 인사 적체에 능력 없는 내가 제자리걸음인 건 좋은데 회사에서 인정받으신 분들께서는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퇴사까지 생각했다는 말에 지점장이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점장으로서 힘든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 놀랐다기보다는 당장 쟤가 관두면 곧바로 직원 충원이 안되는데 그럼 누가 일을 하지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지점장의 말은 드디어 내가 한 말을 이해했나 싶을 정도로 설레는 말이었다. '김대리도 알다시피, 나의 승진을 봐도 그렇고 아무개의 승진을 봐도 그렇고 우리 회사 승진이란 것이 아무 의미가 없지 않냐'는 식의 말이었다. (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저분은 자기가 지점장으로서 어떻게 비치는지 스스로 알기는 알까 늘 궁금했었는데 알기는 아나보다 싶어서 이상하게 안도가 되었다.  


 그리고 지점장은 나름대로 회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내 식대로 정리하자면, 업무의 정확도와 질이란 것은 애초부터 아랑곳하지 말고 위에서 시키는 걸 적당히 듣는 시늉 해가면서 꼴찌만 하지 말자 정신으로 다니라는 것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에게는 (업무적인 것만 빼고) 다 계획이 있었다. 지점장의 그 말에 이 회사를 정확히 파악하고 제대로 다닌 건 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가 여기서 지점장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유불문 '순응'은 이곳 조직원으로서의 1 덕목이고, 그 외에 것은 상당히 부차적인 것이거나 불필요한 것이다.

1 덕목 외에 다른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곳에서 결정적으로 나는 그 1 덕목이 없었다.

본전심리라는 말은 처음부터 가당치 않았다.

전제 자체가 틀려먹은, 정말이지 나는 이상한 손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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