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디 Aug 11. 2020

선배, 핸드폰이 너무 구려요


7월의 어느 주말 회사 독서 동아리 모임을 가졌다.

월별 정기모임은 철저하게 평일에 하지만, 이 날은 친목 도모를 위해 처음으로 주말에 모였다. 우리는 차까지 렌트해서 다 함께 차를 타고 파주 지혜의 숲으로 향했다. 흐리다는 기상예보에 기대가 없었는데 날씨는 더없이 화창했고, 다행스럽게 차도 안 막혀서 기분 좋게 파주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지혜의 숲 앞에 큰 촬영차가 있었고, 수많은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판이 벌려 있는 스케일을 보는 순간, 우리 일행은 스타급 연예인이 촬영을 하나 싶어 너나 할 것 없이 그 주변을 서성거렸다. 하지만 우리가 알 만한 사람은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나중에 지혜의 숲을 떠나기 직전, 미래 지향적인 콘셉트로 보이는 은빛 원피스의 모델을 한 명 보았을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누군지 모르겠어서 소속사가 엄청 빵빵한 신인 아이돌인가 생각하고 우리는 다음 장소로 향했다.





 

 지난 주말, 최대리랑 카톡을 하는 중에 최대리가 그때 지혜의 숲에서 촬영한 것이 S전자의 최신 핸드폰 광고였던 것 같다고 하였다. 하루 종일 TV에서 광고가 나왔는데, 잠깐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때 우리가 봤던 장면인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너무 궁금해하자 최대리가 광고 영상을 찾아서 보내주었다. 찰나의 장면이었지만, 우리가 있었던 장소와 우리가 봤던 모델이 맞는 듯했다. 순간 광고 촬영에 대한 일자무식인 나의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인지도 없는 모델 대비 커 보였던 스케일과 수많은 스태프 동원력이 S전자 광고라고 하니깐 한방에 이해가 되었다.  몇 번이고 광고를 돌려보았지만, 그 더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촬영하는 것으로 보였던 한 장면이 스친 건 체감상 0.1초도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진 자본도 없고, 규모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평소에 자본 내음을 실감할 일이 없었는데,  맡아본 적 없었던 그것이 훅 치고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여전히 갤럭시 노트 5 유저인데 광고에서는 자그마치 갤럭시 노트 20이 내 시선을 빼앗고 있었다.


 




 나 역시 온종일 기술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꽤 자주 자본에서 양산된 많은 것들을 즐기고 있지만,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로서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느끼는 부대낌과 서글픔이 점점 잦아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최근에 신문 열기를 두렵게 만들었던 부동산 정책과 (주로) 서울 집값에 대한 기사 또한 겹쳐졌다.


선두권까지는 못되더라도 뒤쳐지고 싶지 않아 하는 그 마음 하나로 주변을 맴돌고는 있지만  이 숨 가쁨이 내게 맞는 호흡인 건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러면서 어제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리보다는 큰 집에 초점을 맞추며 큰 집에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은 나란 인간...)


 그러고 보니 인천에서 파주로 가던 길, 하늘과 같은 창 밖 너머 풍경에 감탄을 내뱉는 나와 달리 차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이 동네 집값이 어떻다느니 신도시가 어떻다느니 하는 류의 '으른 대화'만이 난무하였다. 누가 맞고 틀리다의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부동산 관련 책을 본다. 다만 그 차 안에서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 뿐이다.
 

내 주변을 둘러싼 어떤 시류가 있다 할 때, 나는 어디까지 적응하고 어디까지 선을 긋고 살아야 맞는 것일까.

참 어렵고 매번 헷갈린다.


 




7월의 파주 지혜의 숲을 나와 밥을 먹으면서  얼마 전에 바꿨다는 후배의 갤럭시 제트 플립 핸드폰이 반짝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실 난 이름도 몰라서 접히는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정확한 명칭을 찾았다) 딱 봐도 예뻐서 후배에게 허락을 받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나도 핸드폰 좀 바꿔야 할까. 돌이켜보니 지금껏 고장 나기 전까지 핸드폰을 바꿔본 적이 없다. 핸드폰은 내가 관심 두는 소비품목이 아니었다. 괜스레 내 핸드폰을 만지작 거려본다. 요즘따라 배터리가 훅훅 닳는다는 느낌이 있긴 한데 아무리 봐도 멀쩡하다.


이것도 인연이니까 (혹시 출시일 전후로 내 핸드폰이 고장이 라도 나면...) 갤럭시 노트 20을 염두하긴 해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가 꿈에 나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