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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ug 18. 2020

출장이 여행으로 바뀌었을 때



회사의 주요 업무는 사실상 두 가지인데, 굳이 둘 중 뭐가 더 낫냐고 따지면 나는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업무가 그나마 내 성향과 맞는 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이 업무를 하면 간헐적으로 지방 출장을 갈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직원에 따라서는 지방 출장을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나는 바로 그것 때문에 이 업무를 선호하고 있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까지 엄격하게 산입 하면 초과근무를 하는 꼴이 될 때도 있지만, 난이도 낮은 용무를 하러 가면서 공식적이고 정당한 사유로 사무실을 탈출한다는 점이 썩 맘에 든다. 특히 역마살이 있는 나에게 지방 출장은 여행을 잘 못 가고 있는 요즘에 그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 나는 출장으로 원주에 다녀왔다. 출장으로 두 번째 방문이었다. 새벽 다섯 시부터 설쳐댄 덕택에 차도 별로 막히지 않았고, 일사천리로 오전 중에 출장 용무를 마칠 수 있었다.

 업무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원주 맛집을 검색했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검색만 해두고 잠시 드라이브를 할 겸 치악산으로 차를 몰았다.
산에 가까워질수록 풍경 그 자체가 힐링이 되었다. 이차선 도로 위로 드리워진 나무 터널과 길이 너무 예뻐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도 찍어 보았다. 도시에서는 굳이 차를 세워 찍을 풍경도 없지만, 비상 깜빡이를 켜고 차를 살짝 옆으로 대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랬다가는 순식간에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무개념 운전자가 될 것이고, 빵빵 거리는 경적소리와 욕을 한 번에 들었을 것이다. 내가 사진을 찍는 몇 초 동안 거짓말처럼 오고 가는 차가 한 대도 없어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배가 되었다.





 일부러 차 창문을 열어 코를 킁킁 거리며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나무와 흙이  내뿜는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너무 좋았다.
나 정도면 그렇게 팍팍한 삶도 아닌데 개인적으로 답답한 일이 많아서인지 뭔가 풀어지는듯한 해방감이 들었다. 자연 앞에서는 나조차도 착해진다는 기분이 많이 든다. 응어리졌던 많은 것들이 그렇게 화가 날일도 분하게 여길 일도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떠나오면 바로 응어리가 단단해져서 그것이 늘 문제다...)

말 그대로 드라이브라 차로 허락되는 입구까지만 찍고 다시 차를 돌렸다. 치악산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는 찐 옥수수를 파는 곳이 있어서 옥수수도 사 먹었다. 치악산 언저리의 공기를 마신 순간부터 이미 출장에서 여행이 돼버렸지만 바로 이때 여행 온 기분이 절정에 달했다
옥수수는 역시 강원도 옥수수였다. 밥을 먹어야 돼서 한 개만 먹는 것으로 겨우 참긴 했는데 중간에 끊기가 힘든 맛이었다.





 드디어 내가 검색으로 찾은 원주 맛집에 도착했다. 식당은 원주 혁신도시에 위치해있었다. 도로 너머로 보이는 미래스러운 건물이 눈에 띄었는데 이름도 혁신도시라니 흥미로웠다. 식당에 가기 위해 안으로 진입할수록 상업시설이 들어차 있는 새로운 상가들과 각종 공공기관 건물들이 눈에 보였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모르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아 저런 기관도 있구나 하는 곳들이 제법 있었다. 저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나와는 달리 전문성 있는 일을 하실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었다.

 내가 찾은 맛집이 진짜 맛집이긴 했는지 예약 없이 갔다가 한 시간 가량 대기를 해야 했다. 주변에 직장이 많은 곳답게 점심시간에 맞춰 사원증을 목에 단 직장인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곳이었다.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까지 주로 무표정인 나와는 달리 그분들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라 그랬을까.



아침도 먹지 않고 쉼 없이 서두른 출장이라 몹시 배고팠던 나는 각종 나물에 밥을 야무지게 비벼먹었다. 여러 가지 반찬을 즐길 수 있어 좋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릴 맛까지는 아니었다.




 식당을 나와 집으로 출발하면서 또 한 번 여러 기관들의 건물을 지나쳐왔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현 직장과 현업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이지 않다 보니, 다른 직장의 건물만 바라봐도 이런저런 잡념들이 머릿속에 가득 다. 혁신도시뿐 아니라 내가 스친 원주는 상당히 깔끔했고 복잡하지 않아서 참 좋았다. 지금 당장 원주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면서 여기서 살면 어떨까 잠시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이상하게 강원도만 갔다 하면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한 달 아니 일주일만이라도... 나무 냄새를 맡고 옥수수를 먹으며 눌러있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왔다.

별다른 걸 한 것도 아닌데, 벌써 또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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