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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24. 2021

인생이라는 출렁다리 위에서


 어느덧 병가기간의 반 이상이 훌쩍 흘렀다. 회사를 다닐 때에 비하면 절대 자유시간이 많이 늘어났지만 글을 단 한자도 쓸 수 없었던 건 그 어떤 생산적인 활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어쩜 이 와중에도 살은 빠지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질 위기에 있지만...) 정말 여러 가지 이유들로 나의 심신은 몹시 쇠약해져 있었다. 몇 주전 상담을 받으러 병원에 갔던 날, 의사 선생님께서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셨다. 마침 내게 또 일이 생겨있던 터라 이제 좀 정신을 차려볼까 하니 일이 연달아 터지는 통에 유독 나한테 자꾸만 파도가 밀려오는 기분이 든다고 말하였다.


 돌이켜보면 별다른 기억이 없는 9살을 제외하고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기 바로 직전마다 참 요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곤 했다. 나 지금 열아홉이고 스물아홉이라고요 여 보란 듯이 병을 앓았는데,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그냥 좀 미쳐있었고 그냥 좀  서 있었다. 서른아홉인 지금은 딱히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데 마흔이 되기 전 예전처럼 병을 앓으라는 양 각종 사건들이 분명한 실체를 갖고 들이닥쳤다. 나쁜 일들은 손을 잡고 온다 라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요즘의 내 상황을 두고 하는 거구나를 온몸 다해 느끼는 중이다.  


 아프기도 하고 무기력하기도 하여 병가 기간 동안 가족 외에 친구를 만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내가 휘청거릴 때마다 매번 달려와 손을 잡아준 대학 선배를 만나러 모처럼 외출을 했다.



 약속 장소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곳엔 갓 생긴듯한 산책로와 호수가 있었다. 사람의 손과 발을 타지 않았단 느낌이 드는 장소가 오랜만이라 어색하기까지 했다. 작은 호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앉아계신 분 나 이렇게 둘 뿐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자연이 내는 소리 중 가장 좋아하는 소리가 빗소리여서 그런 걸까, 인공으로 조성되었어도 자연을 닮은 소리는 사람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나를 이곳으로 불러내 준 것이 고마웠다. 언니가 도착했고  문이 활짝 열린 음식점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마침 제법 많은 비가 쏟아져 이번엔 빗소리를 들으면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는 마장 호수로 향했다.



 언니가 마장 호수에 출렁다리가 있다고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호수 둘레길을 조금 걷자 물 한가운데 곡선으로  늘어진 출렁다리가 보였다. 언니와 나는 다리를 건너려고 다리의 시작점을 향해 올라갔다. 지금 내 인생이 출렁이는데 굳이 또 출렁다리를 건너려 하고 있다고 내가 말하였다. 처음 다리에 발을 딛기 전에는 다리가 비교적 넓고 튼튼해 보여 전혀 출렁거릴 것 같지 않았다. 왜 출렁다리지? 하면서 다리를 건너려는 순간 다리의 출렁거림에 멀미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말 그대로 출렁다리가 확실했다.


 멀리서 보고 추측했던 것과 직접 걷는 그래 이렇게나 다른 차원이지, 출렁임에 살짝 토할 것 같은 느낌마저 지금 내 인생이네, 인생이야 하며 발밑으로 훤히 보이는 호수를 똑똑히 보면서 다리를 건넜다. 나는 출렁임에는 약할지언정 겁을 먹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을 새삼 또 느끼었다.



 마장 호수를 한 바퀴 다 돌고, 차로 나오는 길에 언니가 추천하는 카페에 들렀다.

 인생에서의 '선택'이 갖고 있는 무게감을 전혀 모르고, 지난날의 내가 취했던 선택들에 대한 책임을 지느라 서른아홉의 내가 혼구녕나고 있다두서없이 언니에게 떠들었다. (원인과 실체는 없었어도) 열아홉, 스물아홉 살 그때도 그 나름대로 심각했었는데... 과거의 난 참 나이브했다쉽사리 치부하고 있었다.


마흔아홉의 출렁임 앞에서 나는 확실히 오늘보다 덜 순진할 수 있을까.



 카페를 나오는데 밤이 되었고, 달이 보였다.

이제 조금씩 밖으로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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