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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l 20. 2021

1센트의 환상


 할아버지 댁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새해가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동네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숙덕거리는 통에 작년 마지막 날 밤, 성냥팔이 소녀가 한 모퉁이에서 얼어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대화는 항상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어린것이 불쌍하고 안됐다로 시작해서 그 집 부모들은 뭐 하는 작자 들이냐로  정점을 찍은 다음, 왜 하필 재수 없게 우리 동네에서 죽었냐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거리에서 그 소녀가 성냥을 팔고 있는 모습을 몇 번 보았기 때문에 나 역시 그 소녀를 알고 있었다. 소녀의 꽁꽁 얼어붙은 발을 보게 된 날, 나는 소녀로부터 성냥 한 갑을 샀다. 생각보다 일상에서 성냥을 쓸 일이 별로 없었기에 성냥을 산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책상 속 서랍에 처박아 둔 성냥을 찾아서 가족들이 모두 자는 걸 확인하고 집 뒷마당으로 나와 성냥 하나를 켰다. 치지직! 성냥은 탁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온기를 주며 작은 초처럼 환한 불꽃을 일으켰다. 내가 그 불꽃 위로 손을 올리자, 이상한 빛이 일었다! 성냥팔이 소녀였다!


“안녕? 이제 안 추워 보이네?”


“안녕? 네가 나를 불러주었구나?”


“나를 기억해?”


“그럼, 네가 내 성냥을 사주었었잖아. 1센트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도 거스름돈은 필요 없다며 도망치듯 뛰어갔었지,”


“그런데 왜 하필 성냥이었어?”


나는 거상인 할아버지로부터 늘 들어온 말이 있었다. 사람들한테 무언가를 팔 때는 내가 가진 것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팔아야 한다고 말이다.


대답을 듣기 전에 소녀가 사라져 나는 다시 두 번째 성냥을 켰다.


“음, 내가 가진 게 성냥밖에 없었어. 아버지가 주면서 팔라고 한 게 성냥이었으니깐. 그런데 죽기 바로 전에 팔지 못한 성냥을 켰더니, 사과와 자두로 속을 채워 구운 거위도 보이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도 보이더라고. 정말 신기했어.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항상 그립고 보고 싶었던 할머니를 만났다는 거야. 할머니 품에 안기고 나니, 정말이지 하나도 춥지 않더라고.”


 소녀의 말을 들으려고 계속해서 성냥을 켜다 보니, 어느새 성냥 한 갑이 금세 동이 나 있었다. 소녀 말대로 성냥을 켜면 갖고 싶었던 것과 보고 싶었던 걸 볼 수 있었을까.


 그게 사실이라면... 갖고 싶고, 보고 싶은 게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성냥을 켰을 텐데. 비록 그 모든 게 성냥이 꺼지는 순간 다 사라져 버리는 거라 해도.


소녀가 1센트의 성냥이 아닌 '1센트의 환상'을 팔았더라면,

성냥팔이 소녀는 새해를 살아서 맞이 할 수 있었을까.






성냥을 켜서 소녀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99센트의 환상’이라는 신발가게를 열었다.


가게 문을 연 첫날, 우리 가게에서 가장 예쁘고 비싼 구두를 성냥팔이 소녀가 얼어 죽은 채 발견된 벽 앞에 놓아두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그곳을 가봤더니, 구두는 사라지고 없었다.



** 오랜만에 읽고, 다시 써본 성냥팔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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