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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28. 2021

컬렉터 워너비


 병원에 입원한 지 4일째 되던 날, 생애 첫 그림을 구입하며 알게 된 큐레이터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큐레이터님이 일하고 계신 갤러리에서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전시회 초대권을 보내주고 싶다며 주소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전시 마지막 날 별다른 말도 없이 그림 5점을 구입했던 내가 큐레이터님에게 퍽 인상적이었던 건지, 1년 하고도 7개월이 지났음에도 나를 기억해 문자를 보내주신 그 자체가 너무 고마웠다. 마침 또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뜻밖의 문자를 받아 감수성이 남달랐을지도 모르겠다. 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바로 답장을 보냈다.  그 후 퇴원하고 나서도 크고 작은 소용돌이가 나를 덮치는 바람에 (진심으로 감사했던)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2주 정도 지났을까. 큐레이터님이 말했던 그 초대장이 집에 도착했다. 초대장 봉투에 ㅇㅇㅇ 컬렉터 님께 라고 적혀 있었다. 스스로에게 낯 뜨겁고 부끄러운 명칭이었지만, 왠지 모를 우쭐한 기분도 함께 들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입장권 카드에는 아예 VIP라고 적혀 있었다. 막상 가보면 그 VIP들이 내 생각보다 늘 많다는 게 함정이지만, 입장권부터 Very Important 한 Person이라는데 나쁠 리 없었다.


 사실 나는 전시회를 가기로 한 날 아침까지도 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때 내게는 집을 비울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데, 마침 다른 가족들이 다 집에 있었고 비가 장마철처럼 쏟아지는 등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져 주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건의 기승전결을 알고 있어 근황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데다가, 마침 하는 일이 전시회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언니와 함께 보기로 했다. 전시장소는 코엑스였고, 차가 밀릴까 봐 서두른 나는 한 시간 정도 빠르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코엑스에 온지도 거의 10년이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금세 드라마에서 봤던 대형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촌스러울 정도로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도서관 구석구석을 살피다 짧은 시간 동안 읽 좋은 시집 섹션으로 향했다.  제목만으로 끌리는 시집 3권을 골라서 자리를 잡았다.

한참 한국 시인의 시에 빠져 읽고 있는데, 그 시에서 인용된 문구가 내가 고른 외국 시인의 시집 제목이라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시를 읽고 있을 뿐인데 운명의 장난처럼 나를 저격하는 문장들만 연달아 나와서 또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연거푸 소름이 돋고 있을 때 언니가 도착을 했고, 함께 전시 장소로 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행사였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수많은 갤러리에서 각자 소장하고 있는 주요 작품을 들고 나와 한 곳에 전시하는 아트 페어였다. 공간도 크고 작품도 많아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는데 찬찬히 감상하다 보니 흥미로운 작품들이 꽤 많이 있었다. 아프리카 화가의 그림을 전시했던 갤러리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고, K-POP Sculpture에서 가장 자세하게 감상했다.




 처음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는 작품을 볼 동선을 짜느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전시장을 나올 때 보니 유명 화가의 비싼 작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갤러리일수록 위치가  좋았다. 동산이든 부동산이든 역시 '위치'구나... 자본 심는 데서 더 큰 자본이 나오는구나... 를 또 한 번 실감했다.


 저번처럼 그림을 사지는 못했지만, 보물찾기 하듯 여러 작품들을 발견하여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

우리나라에 재능이 뛰어난 작가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열정의 결과물이 한데 모여있음이 감동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대장 봉투에 써진 대로 진짜 렉터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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