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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30. 2021

앤디가 앤디 워홀을 만났을 때


 언젠가 지인이 내 브런치 필명이 앤디 워홀에서 따온 것이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빌려와 필명으로 쓰는 건 맞지만, 앤디 워홀의 앤디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니까 물론 나도 그를 알고 있었다. 꽤 오래전 그의 전시회에 가서 캠벨 수프 사진을 찍어 미니홈피에 올린 적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사진과 함께 한 줄 혹은 두 줄 정도의 짤막한 감상을 남기는 것에 심취해 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누가 볼까 두려운 문장들 투성이었다.



 최근 몇 달 동안 능동적인 행동들이 불가능해지고, 수동적인 행위만 겨우겨우 해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희한할 만큼 그림을 보고 싶어 하는 나를 보며 내가 그림을 좋아하긴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미치도록 무기력한 상태 때문에 원래 노리고 있던 전시를 놓쳤다는 걸 알게 된 날, 아쉽고 분한 마음에 즉흥적으로 앤디 워홀 전시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한참을 잊고 지냈다. 막연히 6월 말쯤에 전시가 끝난다는 감만 갖고 있다가, 저번 주 갑자기 생각이 나 티켓 구입 화면을 열어 보았다. 사람들이 덜 붐비는 평일에 가서 조용히 봐야지 마음먹었는데, 전시 종료일은 6월 30일이 아닌 6월 27일 일요일이었다. 내게 남은 평일은 6월 25일 단 하루였다.




사실 앤디 워홀은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아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일지라도) 지금까지 판화 작품에 감흥을 느껴본 적이 없는 데다가, 예술가라면 응당 이래야만 한다는 나만의 프레임과 개인 취향에서도 앤디 워홀은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나에게 앤디 워홀은 좀 묘한 구석이 하나 있는데, 딱히 끌리진 않지만 왠지 보고서 아는 척을 해야만 할 것은 박스오피스 1위 영화 같다는 점이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앤디 워홀에 대해 단 하나라도 아는 척할 수 있게 해 보자는 심정으로 전시회장으로 들어섰다.


 금요일 낮이었는데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의 유명세를 다시 한번 실감했고, (나 역시 평일 낮에 가놓고) 세상 한 편에 이토록 부러운 팔자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제1 전시실부터 마릴린 먼로의 여러 얼굴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캠벨 수프 그림 위로는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라는 앤디 워홀의 철학이 적혀 있었다. 전시회에서 저런 글을 본 적도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어 아찔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스폿이었다.


 내가 덥석 좋아할 수 없는 '아티스트'임이 저 문장 하나로 정리되었지만, 나는 이런 '사람'은 의외로 싫지가 않다. 말은 그럴싸한데 말하는 것과 사는 것이 따로 노는 사람보다, 아닌 척 고상 떨면서 온갖 민폐를 끼치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 사회에 나와보니 생각보다 자기의 욕망을 되지도 않게 숨기려 하거나, 삐뚤게 실현하려는 사람들로 득시글거렸기에 이런 군더더기 없는 철학에 속이 다 시원했다. 결정적으로 앤디 워홀은 그 말을 그의 방식대로 멋지게 이뤄낸 사람이라 그  문장에 설득력이 있었다.




 전시를 둘러보니, 실제 그의 작품 활동은 영역의 한계가 어딘가 싶을 정도로 다양했다. 앤디 워홀은 그림, 음악, 영화, 패션, 매거진 등에서 '명성'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열망을 내뿜고 있었는데 이런 점에서 그가 상업예술에 능한 것이 당연했고, 그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욕망과 그에 맞는 재능, 거기에 시대 흐름까지 맞아 주는 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한 인간으로서는 부럽기까지 했다.



 이와 더불어 내가 몹시 부러운 점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의 공간 '팩토리'였다.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작품을 대량 생산한다 하여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라 불렀다는 그 솔직함도 좋았고, 은색 페인팅 벽과 길거리에서 가져왔다는 빨간 소파도 좋았다. 뉴욕 맨해튼에 있었던 팩토리에는 배우, 뮤지션, 패션스타, 스포츠 스타 등 각계 유명인사들이 몰려들었고, 이는 뉴욕 사교계의 입성을 의미했다고 한다. 이 공간이 재현된 걸 보기 전에는 뭐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걸 보고 그 시절 팩토리에 대해 상상을 펼치다 보니 나 역시 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앤디 워홀 작품의 오브제가 되고 싶었겠다 공감이 되었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니 미술 전시회를 봤다기보다는 앤디 워홀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아티스트로서 미지수만, (남한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욕망과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인지하고 치고 나가는 앤디 워홀의 정열과 부지런함, 실행력에 반성을 하게 됐다. 야, 너도 할 수 있어라고 하면 콧방귀 뀌려고 했는데 야, 너도 뭔가 해보고 말해하는 꾸짖음을 받는 기분이었달까.


 전시장을 나오는 길, 나의 방앗간 기념품샵에 들러 소정의 기념품들을 샀다. The Velvet Underground의 노래라고는 Pale blue eyes밖에 몰랐는데, 이번 전시 덕에 이 뮤지션의 다른 좋은 노래들을 알게 된 것도 좋았다.






 이 전시는 여의도 더 현대 서울에서 열렸는데, (백화점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미술 전시를 백화점 한 복판에서  보는 점이 아쉬웠었다. 그런데 오디오 클립에서 앤디 워홀은 '소비의 메커니즘과 그것의 소통 전략을 아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라고 믿었다'는 말을 듣고 어쩌면 그의 예술 세계를 전시하기 위해 이만한 장소가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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