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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10. 2022

달력이 한 장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12월이 되니 공짜로 얻는 달력들이 생겼다.  햄버거 가게에서, 은행에서 내게 빳빳한 달력을 건네며 이제 곧 2023년이 시작될 거라고 한다.  손에는 새 달력이 들려있는데 내 마음은 다가 올 새해를 기대하기보다는 이렇게 또 허망하게 한 해를 보내는구나 하는 쪽으로 기운다. 바로 이 점이 나이 들었다는 증거인 것만 같아 달력 받고, 나이 한 살 더 받고, 씁쓸함이 더블로 간다.


 달력이 한 장 밖에 남지 않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미련 가득한 두 눈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하나 되새긴다 한들 이미 벌어진 일들이 바뀌는 것은 단 하나도 없지만... 그렇게 더듬더듬하다 보면 나 스스로가 장해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찢겨나가는 건 12월의 달력이지 내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살면 살수록 이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는데, 2022년 12월 현재 비교적 온전(?)한 정신으로 지난 한 해를 어루만지는 나 자신이 기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한 해를 한 줄로 요약해보니 '간극'을 좁혀보려고 애썼던 2022년이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는 간극을 '현재 내가 있는 곳과 가고 싶은 곳 사이의 거리'라고 정의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대한 그림에는 계속 이것저것이 추가되어 딱 이거야 라고 말할 수 없지만, 현재 내가 있는 곳이 그곳과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것은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올해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건강하지 못한 몸을 고치려고 두 번의 수술을 했고, 내 몸을 돌보는데 시간을 썼다. 12년의 근속 기간과 어울리지 않는(?) 대리라는 직급을 뛰어넘으려고 안 하던 짓도 했다. 나와 관련된 내 일인데도 아무런 의견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흘러가 본 인생 첫 번째 경험이지 않았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뒤늦은 승진을 통해 대리에서 벗어났지만, 내 가치와 간극이 큰 이 회사와 완벽히 멀어지고야 말겠다는 다짐에 확신을 품었다.


 그리고 작년에 나는 소중한 존재를 잃었다.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살고 있는데, 어쩌다 마주할 때 아직도 아문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곤 다. 어제는 퇴근을 해서 소파에 걸터앉아 그 소중한 존재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을 찾아봤다. 내 감정이 어디까지 소용돌이 칠지 나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평소에 금기시되는 행동인데 어제는 왜 그랬지 모르겠다. 마침 집에 아무도 없어서 핸드폰을 부여잡고 소리를 내서 꺼이꺼이 울었다. 그리움, 상실감, 죄책감 등이 뒤엉켜서 끝도 없이 눈물로 쏟아졌다. 이 간극은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것이기에 결국 그에 대처하는 내 마음의 간극을 좁혀야만 한다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내 마음이 머리보다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 문제다.

 소중한 존재의 부재, 그 간극에 대해서 2022년 12월 현재 아직은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한 나 자신을  확인했다. 1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아무래도 이 간극 좁히기는 내년에도 이어져야 할 것 같다.






  해를 돌아보고 있는 지금 Brian McKnight의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듣고 있다. 머라이어 캐리 언니의 목소리가 크리스마스 알람 같은 것이라면, 내게 브라이언 맥나이트 오라비의 목소리는 겨울의 알람과도 같다. 그 어느 계절보다 겨울에 그의 노래를 찾아서 듣는다. 목소리의 마법인지 가사가 슬픈데도 몸과 마음이 따숩다.


 어쩜 가사도 2022년 12월의 나에게 와서 척 달라붙고 있다.


I'm gonna dry my eyes
Right after I had my One last cry
One last cry
before I leave it all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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