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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Mar 15. 2023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재미 삼아 인터넷에 떠도는 MBTI 검사를 처음 해봤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뭐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였다. 내 주변 또래 친구들한테 너 MBTI가 뭐야, 했을 때 바로 대답하는 이는 한 두 명? 정도에 불과했다. 역시 나는 혈액형 세대인 건가 하고 잊고 있다가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몇 번을 더 검사하게 되었다. (유료검사도 있다는데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 검사시마다 단 하나의 변동 없이 매번 똑같은 결과가 나오고 나서 드디어 나는 나의 MBTI를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내 유형이 갖고 있는 특징들 강점과 약점, 사고와 습성, 인간관계 및 연애, 직장생활에서의 모습 등을 설명하는 글들을 읽고는 기억을 넘어 신봉하게 되었다. MBTI에서의 내가 실제의 나와 95프로 이상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처음에 내가 의아했던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F형 인간이 아니라 T형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어, 나 굉장히 감상적이고 감수성 풍부한데?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누군가로부터 들은 소리도 있고, 둘의 행동양식 차이를 인식하고 나서야 어설프게나마 수긍하게 되었다. 아, 나는 영락없는 T구나...


 이 인과관계가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최근에 평소 잘 읽지 않는 장르의 책을 집어 들었다.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란 산문집이다.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그의 시를 읽다가 마음 한 구석이 내려앉은 적이 있다. 시 제목에도 마음이 들어가서였을까. 그의 시를 읽으며 나는 대체 언제쯤 한 철이라고,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박준, 마음 한철>


 내 측근들이 보지 못한 것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굳이 보태지 않더라도, 그 누구라도 인정할 만큼 나는 한 사람에게 꽤 오랜 시간 동안 상당히 미쳐 있었었다. 사랑은 그 누구보다 쉽고 빠르게 빠져놓고, 이별은 그 누구보다 어렵고 늦되게 받아들였다. 헤매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자 나중에는 이별에 대한 아픔보다 그에 대처하는 내 자세에 대해 걱정되기 시작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려있는 '독립기관'이란 소설에서, 주인공 남자는  사랑 때문에 곡기를 끊고 그야말로 굶어 죽는다.

 이 책을 실연 전에 읽었는지 후에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이야기가 전혀 기이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연 때문에 식음을 전폐한 적은 없었는데, 물리적으로 숨 쉬고 살아 있어도 내 안의 많은 것이 죽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 끝난 사랑을 붙잡고 그리워하는 것으로 남은 인생을 버티다 죽는 게 이번 생의 의미인 건가 하는 것 때문에 공포심을 느낀 적도 많았다.

 연애하다 헤어지는 게 나만 겪는 일도 아닌데 왜 나는 이토록 유난이고 요란스러울까? 하다가 이것은 일종의 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사랑이 뭔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나는 '사랑'이란 감정을 믿지 않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 세상에서 단 한 톨의 의구심 없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엄마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 오직 그 하나뿐이라는 극단적이고 단호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본인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거나 질질 흘리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바라봤고, 끝이 난 관계를 제대로 끊지 못하고 미련 떠는 사람들의 우유부단함을 찌질하다 평가했다. 그 벌로 나는 이보다 더 한심하고 찌질할 순 없다 할 정도로 감정 덩어리 그 자체가 되었고, 떠난 관계에 대해 징그럽게도 질척거렸다. 나도 모르게 삐져나온 적은 있었어도, 이렇게 담담하게 기술하는 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내 감정은 언제나 ing에 even now였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은 드디어 한 철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쥐어줬던 그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제는 온전히 내 마음이 되었다.


 어제 술자리에서 작년에 같은 지점에서 일했던 후배하나가 뜻밖의 질문을 했다. 난 기억도 못하고 있었는데 "차장님, 저번에 여행 가신 곳 비밀이라고 하셨잖아요. 다시 물어봐도 돼요?"

 질문은 하나였는데 쿨하게 여러 대답을 해주었다. 나라이름을 댔더니 후배가 그 나라의 유명한 휴양지 섬을 말하며 거기 가신 거냐고 되물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거기 아니고 수도. 한 20번도 더 넘게 간 거 같은데? 내가 좋아하던 애가 거기 살았거든."






 진부하게도 시간은 진짜 약이었을까, 제발 그만 잊게 해 달라고 하는 처절한 바람의 응답이었을까.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그에 대해 언급을 하든 하지 않든 일부러 떠올리지 않는 한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후배의 질문으로 확인사살까지 해서인지 정말 오랜만에 즐겁게 술을 마셨다. 버번위스키가 이렇게 달콤한지 처음 알았고, 꽤 때려 마셨는데 많이 취하지도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ㅡ 박준, 울음


심지어 나는 이제 다른 이를 위한 울음을 꿈꾼다. 이게 다 네 덕분이다. 아니 T형인 내 덕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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