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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Nov 25. 2022

평생 혼밥 가능한 일일까


 지금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을 만나려면 대개 평일, 그중에서도 친구들 아이의 등원과 하원 (혹은 등교와 하교) 사이의 시간을 노려야 한다. 그래서 주로 내가 회사에 가지 않는 평일에 약속이 성사되는데 매번 한정된 시간 동안 치고 빠지는 만남을 하다 보니 헤어질 때쯤엔 친구들도 아쉬워하고 나도 아쉬운 경우가 다반사다.

허겁지겁 가는 친구들을 볼 때면 늘 신기함과 존경스러움이 교차한다. 아직 나에게는 없는 것이라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사람을 키워내고 있는 사람만이 뿜어내는 그 특유의 어른 미가 있다. 그러면서 또 동시에 나한테 지금 애가 없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안도감도 같이 든다.     

 나는 몇 안 되는 역할도 버거워 이렇게 징징거리는데, 나같이 깜냥 안 되는 인간이 애까지 있으면 어쩔 뻔했어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이다.



 

  출근하지 않은 어느 평일 날, 동탄에 살고 있는 육아맘 대학 동기를 안산에서 만났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 미치게 반가워하며,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 조금의 틈도 없이 꽉꽉 채운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때 친구와 삶의 밸런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결혼, 육아를 선택한 삶과 싱글인 삶이 이렇게 모 아니면 도로 갈릴 수밖에 없냐는 것이었다.

 실제 결혼 후 육아 중인 친구들과 혼자인 내 삶은 많은 측면에서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데, 특히 개인 시간의 항목이란 부분에서 극단적으로 다르다. 한쪽은 전무, 한쪽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삶의 요소 중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부분도 바로 오롯이 내 것인 나만의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애가 한창 엄마 껌딱지로 달라붙는 시기에 친구 중 한 명은 볼일이 없는 데도 화장실에 들어가 핸드폰을 봤다고 했다. 그나마도 애가 문을 두들기는 바람에 금방 나왔다는 것을 보면 자기 시간에 대한 절박함과 목마름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그에 비해 나에게는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털같이 많은 시간이 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도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시간의 활용에 대해 (나 자신 말고는) 그 어떤 핑계나 변명을 댈 수 없기에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나만의 시간을 제대로 못 보내면 (행여 혼자라서) 더 초라해 보이거나 궁상맞아 보일까 봐 더욱더 기준을 높이 삼는 경향도 생겼다.

 평소의 행색과 현재의 내 위치 등등 나를 설명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저러니까 혼자지' 하는 소리 안 들으려고 (생전 없었던) 엄격한 잣대로 스스로를 점검하는 일도 많아졌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으면 완벽한 혼자의 삶이 아니기에 이번 여행엔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예행연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국이라 한정적이긴 했지만 내가 먹을 밥을 내 손으로 준비해서 차려먹고 직접 뒷정리를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기간 동안 밖에서 밥을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한 입에만 음식을 넣는 것인데도 정성을 다하려면 한도 끝도 없었고, 입이 하나여도 식사 앞뒤로 걸리는 준비 및 정리의 절대 시간은 똑같았다. 하루 이틀이지 이게 반복되면 너무 귀찮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면서 또 한편, 혼자 먹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로 빠지기 시작하면  밥을 대충 먹는 일이 많겠구나 싶었다. 요리하고 설거지하기 귀찮아서 실제 중간중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음식이 맛있게 잘 되면 당연히 기뻤지만, 혼자 먹는 밥이 이런 맛인 건가 해서 중간중간 목이 메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빼박 마흔에 사람을 만날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회사-집이라는 루틴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달라지는 게 없을 텐데 평생 이렇게 혼자 밥을 맛없게 먹어야 하나 상상하니 너무도 암담했다. 물론 멍석이 깔려도 떠밀려 가는 한 발자국은 극도로 경계할 테지만, 왜 어른들이 특정시기부터 결혼 결혼하시며 귀에 딱지를 앉게 한 건지 알 것도 같았다.


 자기 시간을 극단적으로 빼앗긴 기혼자 친구들은 먼 산을 바라보며 자주 조리곤 한다. 


'안정적인 직장 있으면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인간의 회한을 이해하면서도, 한 번도 못 간 내 앞에서 그런 소리들을 할 때마다 '꼭 지들은 다 결혼해 놓고 그딴 소리하더라'라고 쏘아붙이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싱글인 내 삶이 조금 더 낫긴 한 건가 하는 일말의 안도와 묘한 우월감도 있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지금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한다면, 어쩌다 가끔 그런 거 고 평생을 혼자 밥 먹을 수 있겠니라고 되묻게 될 것 같다.


 내 선택의 결과로 어쩌다 이 길로 흘러왔지만, 과연 내가 끝까지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극심한 공포감이 밀려온다. 주변 친구 10명 중 9.9명이 기혼자에, 이 나이가 돼보고 나니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여행 내내 혼자 밥을 먹으며 몸서리치다가 작은 햇반을 두 끼에 나눠먹을 정도로 식욕을 잃었다.


  결혼해도 외로운 건 똑같지만 그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는 친구들과 달리, 인간의 절대 고독과 습관성 외로움의 차이마저 구분하여 음미할 수 있는 나.


  어떤 길이 나에게 더 맞았던 것일까?

 '나만 이제 안거니' 시리즈의 하이라이트.


 늦지 않는 선에서, 준비 아니 대비가 몹시 시급하다.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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