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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May 13. 2023

노처녀, 5월의 결혼식을 가다


오랜만에 결혼식 참석을 위한 외출을 한다. 계절의 여왕 5월 답게 날씨가 찬란하다 못해 눈물이 날 정도로 좋다. 평소 잘 안 입는 치마까지 꺼내 입었는데, 적당한 온도와 세기를 가진 봄바람이 치맛자락을 흔들고 내 마음도 같이 흔든다. 측근들은 사실상 거의 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주말에 결혼식 참석 이벤트는 이제 내게도 흔치 않은 일이다. 오늘은 한 학번 위인 선배 오빠의 결혼식이다. 엄청 친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안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선배다.

사실 나는 이 오빠하고는 대화를 길게 해 본 적이 없다. 근데 항상 오빠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오빠를 떠올리면 엉뚱함과 순수함, 고생한 번 안 해봐서 꼬인 게 없는 도련님 같은 이미지가 함께 떠오른다. 오빠는 전공과 진로도 세상의 기준이 아닌 언제나 자기 마음의 소리대로 따라갔는데, 그 또한 멋있었다. 딱 한번 내가 오빠를 갈군 적이 있었는데, 주변 학교들과 학점 교환이 되던 시기 오빠가 굳이 이대에서 수영 강좌를 수강했던 일이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인간대 인간으로 십분 이해한다) 그리고 오빠는 01년 신입생 눈에 결정적으로 잘생겼었다.






 이 나이 먹어 혼자만 시집을 못 가고 있으면 이상한 자격지심과 곤조가 생기는데, 내게 직접 청첩장을 주는 정도의 정성을 보이지 않는 신랑 신부의 결혼식엔 결코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빠는 내게 모바일로 청첩장을 보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못난 규칙을 흔쾌히 깨고 바로 가겠다고 답장을 했다. 아마도 보이는 게 다인 오빠의 순수한 성격을 알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고, 내가 오랜 시간 꿈꿔왔던 결혼을 오빠가 하기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모바일 청첩장을 열어보니 오빠의 신부는 외국인이었다. 혼인도 전통 혼례였는데 아마 신부를 배려한 거겠지라는 추측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너무 흔한 국제결혼 커플이지만 내 측근 중에는 처음 있는 결혼이다. 나는 오빠에게 신부가 미국분이라는 것만 들었다. 내가 삼십 대 내내 사랑하고 애달퍼했던 사람이 외국인이었기에 국제결혼임이 확 드러나는 신랑신부의 사진, 전통 혼례의 사진들을 볼 때부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난관이 있는 커플들이 비단 국제 커플뿐이겠냐마는  내게 익숙한 그 모든 난관들을  뚫고, 사랑의 결실을 맺은 사진 속 오빠는 무척 행복하고 편안해 보였다. 대리만족이라는 감정 대체 그게 뭔데 할 정도로 나는 그 감정을 이해 못 하는 1인 중 하나인데, 처음으로 대리만족이란 감정도 느꼈다.


내가 끝내 이루지 못한 한 장면,

그토록 원했지만 구현해내지 못한 한 컷.

나도 결과가 좋았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내겐 미완성으로 남은 그것을 완성한 오빠가 부러웠지만, 이제는 말끔히 잊었기에 (궁상맞음 없이) 오빠의 결혼식을 축하만 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동기 결혼식이 아니라 선배들 사이에서 혼자 뻘쭘할까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나의 친애하는 동기 두 명이 같이 가준다 하여 오랜 친구들을 다 같이 만난다는 기대감도 상당하다. 나이가 들어 서로 바쁘게 살다 보면 경조사의 이런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


오늘의 날씨, 오빠의 결혼식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데 사실 요즘 나의 애정사는 40대의 것이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롤러코스터고 앞날이 캄캄하다.


 전철만 2시간 가까이 타고 가는데, 안 꿀려 보이려고 안 신던 하이힐에 안 입던 치마까지 뻗쳐 입고 가는 내 모습 장하다.

 남의 잔치를 핑계 삼아, 나의 애정사 서러움을 이유 삼아 오늘 술이나 진탕 마셔야겠다.



보태기>


전통 사대부가의 혼례식은 본디 음의 기운이 강해지는 해질 무렵 이뤄진다고 한다.


시집가는 딸아, 그대는 석별의 정을 아는가.

(네, 이제 저도 알고 싶네요)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훌륭한 남편과 현명한 아내가 될 것을 서약하고, 술잔을 교환하는 서배우례


신부님이 술을 너무 잘 드시네요 라는 집례자님 말씀에 하객들이 빵 터진다.

(현명한 아내, 술잔 비우기 나도 정녕 자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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