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지나쳤던 단어가 갑자기 귀에 꽂히고 머리에 남는 때가 있다. 순간으로 모자라 꽤 긴 시간 내 일상을 맴돌고, 내 번뇌들 사이사이를 알짱거리는 그런 때. 나는 이럴 때 겸허히 어떤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제 그 단어는 나에게 가까이 왔고, 내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며, 멀지 않은 미래에 내가 자주 떠들게 될 거라는 것을.
얼마 전 돈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들은 백세시대란 말이 좀처럼 내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소위 재수 없어서(?) 백세까지 산다 해도 엄밀히 그 세월의 반도 안 살았는데,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희한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백세시대란 말, 새삼스러운 말도 아니고 이제는 식상해진 말 아니었던가. 대체 왜 그러지 하다가 몇 해 전부터 나의 노화를 찐으로 실감하는 순간이 많아져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염색의 때를 놓치고 머리를 들추기라도 할라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있는 새치, 푹 쉬었다 한들 좀처럼 풀리지 않는 피로감, 고기와 밀가루에 대한 식욕을 받쳐주지 못하는 소화력, 활력 증진이 아니라 살려고 꼬박꼬박 챙겨 먹는 건강식품, 말하다가 잘 생각이 나지 않아 꼭 한 두 글자 씩 틀리게 말하는 고유명사(인물, 명칭, 지명) 등등.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이러한 신체 증상들이 내 나이를 증명한 지 오래되었고, 아무리 만 나이로 계산하는 애를 써봤자 이제는 빼박 40대다. 각종 공모전이나 제도 혜택에서 '청년'으로 지원자격을 한정할 때 그 상한선이 보통 만 39세 이하인 경우가 많으니 나는 이래저래 더 이상 청년이 아닌 것이다.
괜스레 서글퍼져 검색창에 백세 시대를 쳐봤다. 호모 헌드레드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첫 줄부터 '100세까지 산다는 것은 은퇴 이후 100세까지 살아갈 여유 자금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로 시작한다. 더 이상 읽기 싫어진다. 매일경제의 가장 최근 관련 기사 제목은 "친구는 건물주, 난 일용직" 60대부터 소득차 확 커져 이다. 퇴직 등으로 근로소득이 급격히 줄어드는 고령층일수록 비슷한 연령대와 빈부격차가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동년배 간 불평등이 커지는 이른바 '연령 효과'는 40대 중반 이후 유의미하게 나타났고, 은퇴가 가까워지는 50대 후반부터 확대된다고 한다. 거기에 60세 이상 고령층은 노동시장을 떠난 집단과 남아 있는 집단 간 근로소득 격차에 사업소득, 임대소득 격차도 더욱 컸다는 결과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검색을 하다가 작년에 조선일보에 실린 기획기사 시리즈(70대에 거지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피해야 할 재테크 칠거지악을 7회로 나눠 소개)까지 다다랐다.
칠거지악 중 기억에 남는 건 무전장수(돈의 수명을 자신의 수명만큼 연장시키지 않으면 노후 파산까지 갈 수 있다는 공포), 간병지옥(간병비 부담이 심할 경우 장수는 축복이 아닌 고통), 연금격차(인플레이션은 은퇴자들의 적, 노년에 우아하게 남미크루즈를 탈 수 있을지 나가는 돈 무서워 지인과 연락을 끊고 살지는 은퇴자산관리에 달림), 백세쇼크(수명이 늘어난 100세 시대에는 삶에 대한 새로고침이 필요), 돈맥경화(나이 들면 월급이 사라져 현금흐름이 훨씬 중요해지니 은퇴 후 꾸준한 현금이 나오는 파이프라인 확보, 연금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대출을 갚아 론제로(loan-zero) 만들기) 등이었다.
스튜던트 푸어, 하우스 푸어, 에듀 푸어 받고 노후 대비까지... 돈으로 전전 긍긍해야 하는 이 사슬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숨이 붙어 있는 한 결코 끊기지 않는 견고한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 기사를 읽을 때 김밥을 먹고 있었는데, 더 글로리에서 동은이가 연진의 집을 바라보며 와신상담하는 것과 비슷한 모드가 조성되었다. 사람이 세상에 던져져 사는 동안 닥치는 문제가 돈만 있는 것도 아닌데, 돈 하나만으로 충분히 김밥이 얹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욜로에 카르페디엠, 나에게는 먼 이야기라고 치부해 가입할 때 몇 십만 원 넣어 놓고 잊고 살았던 IRP계좌에 당장 돈을 입금했다. 연에 받을 수 있는 세제혜택의 최대한도를 월로 나눠 월급날마다 입금하기로 한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뀐 것만으로 겔겔 거리는 나를 반성하고 체력과 건강관리 역시 신경 쓰기로 한다. 그동안 지나치게 젊음을 과신하고 세월의 흐름에 안일했다. 백세시대와 관련한 기사들이 그 어떤 호러영화보다도 나를 이토록 떨게 할 줄 나조차 몰랐었다.
나는 현재에 발 딛고 사는 사람이니 데이터와 확률에 근거한 AI, 챗GPT와 AskUp에 확인 사살까지 마쳤다. 40대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뭐야?라고 물으니, 몇 초만에 40대인 나의 과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 그중에서 가장 드라이하고 현실적인 항목은 역시 금융계획과 건강 관리였다.
몸에 좋은 것 챙겨 먹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이자, 배당, 임대 소득의 파이프라인 만들기. 아, 말은 참 쉽고 간단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사항 같다. 오늘을 허덕이고 내일을 대비해야 하는 것에 숨이 턱턱 차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곧 사는 거고 이렇게 해야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시대인 것을.
유엔은 65세 이상이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는데,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층 비중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설 전망이라고 한다.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앞둔 지금, 그 트렌드(?)가 곧 내 얘기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인 게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