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40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나서부터 불과 최근까지 나의 상태는 '아포리아', (막다른 곳에 다다른) 그야말로 길이 없는 상태였다.
가왕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를 부를 때 유독 절규하는 대목 "누가 사아랑을 아~르음 답따 했는가"라는 가사처럼 나도 워딩 그대로 절규하고 싶었고, (공자님의 귀에다 대고) "누가 마흔을 불혹이라 했던가"라고 징징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불혹맞이 생일빵 덕에 나는 완벽히 미혹됐었고 제대로 판단력이 흐려졌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냈던 휴가에 (나는 살아야 했으므로)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리하여 소마 미술관에서 한국근현대미술전을 관람하고 느꼈던 행복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바로 그 다음날 서울시립미술관에 가서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봤다. 전시제목까지는 확인 못 하고 갔는데, 너 길 잃었지? 그렇다면 제대로 왔어.라고 하는 양 전시 제목이 '길 위에서'였다.
금요일 오전 10시 첫 타임으로 예약했는데도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호퍼의 인기가 이 정도구나 입구에서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던 나는 오디오가이드에 의지하면서 그림 하나하나 차분히 감상해 나가기 시작했다.
1. 자꾸만 상상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보고 있는 동안 그림 자체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고 있는 나를 여러 번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동행이 있었다면 그림 속 저 사람 지금 이런 생각을 하거나 이런 마음 일거 같지 않아? 그림 속 장면은 이런 상황일 것 같지? 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눴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의 그림은 알프레드 히치콕, 빔 벤더스, 데이비드 린치 등의 영화계 거장들과 현대 사진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실제 나도 <푸른 저녁>과 <밤의 그림자>를 보면서 인물의 대사가 들어간 시퀀스를 지어내며, 꽤 오래 그림 앞에 서 있었다.
2. 빛과 그림자를 갖고 노는 화가, 어쩌면... 신일까
에드워드 호퍼 그림을 보며 스탕달 신드롬을 체험했다까진 아니지만, 그림을 보는 내내 그가 표현한 빚과 그림자에 대한 탄식을 자주 내뱉었다. 내가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갔다 왔다고 하자 (미술을 전공한) 올케가 처음 한 말도 빛과 그림자에 대해 배울 때 반드시 언급되는 화가가 에드워드 호퍼라고 했다.
즉 빛과 그림자를 표현하는 그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은 나 같은 미술 무지렁이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정도다.
그림 속 빛과 그림자를 천천히 응시하다 보면 그 순간의 감정과 정서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빛과 그림자'가 결국 자연과 인간사 전체의 메타포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는 '이면'을 이해할 줄 아는 화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빛과 그림자'의 이면을 이해하고, 그림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그것을 자유자재로 관장까지 하니 몇몇 그림에서만큼은 그가 화가가 아닌 신처럼 여겨지는 게 무리가 아니었다.
3. 현대인의 한 컷을 스케치한 현대미술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들인 극장, 식당, 사무실, 방 등은 우리 일상의 풍경과 상당히 닮아있다. 그림 속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 또한 언젠가 우리가 한 번쯤은 했을 법한 그것과 무척 유사하다. 그런데 그런 익숙한 장면의 그림들을 마주할 때마다 가장 빨리 건드려지는 감정은 단연코 '쓸쓸함'이다. 이번 전시에서 여러 그림을 통해 확인한 사실인데, 그가 구사하는 구도와 색감이 현대인의 한 컷을 표현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시 팜플랫의 표현대로) 고립, 단절, 소외의 정서가 만연한 오늘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재조명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나는 체험했고 또 발견했다.
특히 <황혼의 집>을 감상할 때는 내 안의 온갖 불안과 고독의 감정이 소용돌이쳤는데, 왜 그런 건지 그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이 그림을 그릴 당시의 시대 상황과 호퍼의 개인적 경험 역시 혼란스러웠다는 것에 힌트가 있을 것 같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화가의 마음이 내게 전달되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고, 그림 속 숲으로 난 계단을 피맛나게 뛰어오르면 이 불안과 고독이 사라질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었다.
전시를 다 보고 나면 러닝타임이 한 시간을 훌쩍 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수 있다. 인간 에드워드 호퍼, 화가 에드워드 호퍼, 그의 작품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알토란 같은 영상이라 시간만 허락하면 죽치고 앉아 두 번, 세 번 보고 싶었다. 전시 기간 내에 한 번 더 갈 수 있다면 그 영화만 보다가 나올 생각도 하고 있다.
일부러 이 글을 쓰는 동안 그룹명부터 공허하기 짝이 없는 Cigarettes after Sex의 Apocalypse를 틀어 놨는데 제법 어울리는 BGM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 다시 미혹되지 말라며 시원하게 '불혹'의 예방주사를 꽂아 준, 그래서 올해 상반기 내내 지독히도 길을 잃게 해 준 어떤 자식이 떠오른다. 덕분에 에드워드 호퍼를 만나 (차마 쓰지 못한) 영감을 얻었으니 이거 참 드럽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