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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pr 22. 2019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몇 년 전부터 내게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TV 뉴스나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합격, 부자, 대박, 성공 신화, 몇억 돌파의 주인공 등의 수식어를 갖는 인물이 등장하면 그 인물이 ‘몇 살’인지를 꼭 확인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들의 나이를 캐봤자, 다치는 건 내 마음뿐인데, 그것을 향한 추적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시계가 있다 한들, 세상이 주목하는 키워드 앞에서 순간순간 조급 해지고 작아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마음을 가다듬고, 낼모레 마흔인 나의 시계를 응시한다.

 아직 회사를 다니니 자연스럽게 앞으로 회사 내에서의 내 위치와 그때의 내 나이에 대해 생각해본다. 생각할수록  답이 안 나온다. 회사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변한다 해도 아주 느리게 변할 것이다. 회사는 이 기준과 이 속도에 맞출 수 없다면, 떠나야 할 사람은 라고 할 것이다. 회사의 그것에 맞춰서 만큼 일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널렸, 나 없도 회사는 너무 잘 돌아갈 것이 때문이다.

 제법 오랜 시간 방황하다가 뒤늦게 사회인이 된 도인 같은 오빠에게 이런 부분이 답답하다고 말했더니,

자기 속도에 따른 커리어를 진짜 원하는 거였다면 애초에 공공기관을 들어가지 말았어야 한다는 의견을 들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안정적이고 워라밸 되니까 입사한 거 아니었냐고 덧붙이는데 정통으로 뼈를 맞았다. 그렇지만 나도 가 이렇게까지 내 성장을 운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는 사람이 있고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는 사람이 있다. 나는 주로 후자였다. 외부의 구조적 모순과 불합리한 기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기보다 언제나 나의 노력과 능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나를 돌아보는 쪽이었다. 자기반성이 투철해서 그랬다기보다는 거시적인 시야가 없는 데다가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더 쉬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나를 채찍질하는 쪽으로 살아왔는데 선택을 잘못한 것도 내 탓이고, 떠나는 것도 내가 돼야 하다니 왠지 모르게 너무 억울하다.

 

억울함과 답답함에 내린 결론은 일을 하면서 나만의 꿍꿍이를 가져야겠다는 정도다. 무엇을 가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뭐라도 하면서, 천천히 집요하게 생각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건 쥐도 새도 모르게 해야 성공한다기에 마음속 깊이 담아두려고 했는데, 내뱉어야 스스로 책임감을 가질 것 같아서 배수진을 치는 차원으로 조용히 읊조려 본다.

내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회사인지, 지난날의 나 자신인지, 둘 다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확실한 꿍꿍이를 갖기 위해 뭐라도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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