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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May 13. 2019

평생 못 터득할 살아가는 기술



내게도 꿈이 똑떨어지는 명사형인 시절이 있었다.  
 
 나는 '무엇'이 될 거야.

  그 '무엇'을 위한 공부를 접고 난 뒤부터는 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뭉뚱 그러진 표현을 하게 되었다. (접은 건지 접힌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때를 기점으로 확신에 찬 계획과 단정적인 다짐들로부터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이미 다 어딘가에 소속된 친구들과 막연한 진로에 대한 얘기를 나눴던 이십 대 중반. 그래서 이제 뭐할 거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글쎄. 돈이 엮이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라고 대답했었다.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비웃는다는 말처럼 신은 이런 나를 도저히 가만두실 수가 없었는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돈이 엮이고 사람을 상대하는 곳으로 보내주셨다.
 제법 긴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토록 원하던 것은 단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고, 매번 이렇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 새삼 나의 지난날들이 내가 살아온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니, (인생에서 나름 굵직한 단계 단계마다) 내가 ~하기만 하면 세상만사 다 보장받는다는 말도 안 되는 주문을 걸고 매 시기를 버티는 수법을 구사해왔다. 한 시절 버티는 데는 효율적이었을지 몰라도 그다음 시절에는 늘 후폭풍이 컸는데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연속성 있는 삶에 대한 이해도가 이리도 떨어지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에 상상했던 지금 내 나이의 모습은 현재의 내 모습보다 훨씬 더 현명하고, 무엇에 대해서든 확신에 차있는 그런 어른이었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확실히 알겠는 건,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 그 한 가지 사실뿐이다.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학창 시절, 문제집을 풀다가 도저히 모르겠거나 틀린 문제가 나오면 문제집 뒤의 정답 및 해설을 보면서 출제자의 의도, 문제 자체에 대한 석연치 않음과  찝찝함을 정리하며 다음 문제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사는 건 마땅한 정답 및 해설이 없으니 살수록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이러는 와중에 무려 10년 전 발매된 앨범 중 눈물 나게 위로되는 노래가 있었으니, 아ㅡ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초원에 풀이 없어 소들이 비쩍 마를 때쯤
선지자가 나타나서 지팡이를 들어
저 쪽으로 석 달을 가라

풀이 가득 덮인 기름진 땅이 나온다길래
죽을동 살동 왔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잖어

푸석한 모래 밖에는 없잖어
풀은 한 포기도 없잖어
이건 뭐 완전히 속았잖어
되돌아 갈 수도 없잖어

ㅡ장기하와 얼굴들, 아무것도 없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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