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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May 20. 2019

전래동화 읽기의 부작용

권선징악과 인과응보 vs 현실


 엄마 말에 따르면, 어렸을 적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였다고 한다. 연년생인 내 동생 육아와 집안일까지 정신없이 바쁘셨던 엄마는 계속되는 나의 요구에 책의 내용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틀어주셨다. 그 후로 나는 얼마나 그것을 반복해서 으며 책을 본 건지, (원래 전혀 글자를 읽을 줄 몰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길거리의 간판을 줄줄 읽어 엄마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 책들은 전래동화 시리즈로 한 20권 정도 되었다. 내 어린 시절 전래동화의 주요 테마는 권선징악다. 선함은 복을 받고 악함은 벌을 받는다는 것이  주된 주제였던 것이다.

아마 나는 그때 전래동화 읽기를 통해  한글 읽는 방법을 습득하고 선악에 대한 기준, 인과응보라는 세계관도 함께 형성했던 것 같다.  일자무식에 백지와 같은 시기여서 그랬는지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라는 메시지는 내게 오롯이 흡수되었고  꽤 오랜 시간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학창 시절에는 외부세계를 고민하다기보다, 내 성적 걱정과 내적 감상에 빠져 '그것'을 점검할 겨를이 없었다. 주위에 특별히 선하거나 지나치게 악한 사람이 없어서 딱히 의심할 계기가 없기도 했다. 선악에 대한 기준이 합의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친분이나 관계 자체가 형성되기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내 일상에서 그 기준과 세계관이 무너질 일은 한 마디로 별로 없었다.

 조직생활을 하고 세상에 뛰어들고 나서 맺어진 관계나 마주한 상황은 내 선택이라기보다 주로 복불복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거의 매일 시. 분. 초 단위로 시험대에 올랐는데 애석하게도 현실 속 결과 매번 '착함'은 더 힘들어지고 '나쁨'은 (별 일 없거나) 더 큰소리치고 잘 사는 것었다. 현실이 전래동화보다 길고 기니까 결말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이제껏 진행되는 것을 봐서는 그 반대가 될 확률은 현저히 낮아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이 그렇듯 '권선징악과 인과응보'에 대해서도 피식 웃음을 지게 되어, 래동화와 전혀 다른 현실로부터 덜 상처 받는 편이긴 하다. 그냥 이게 원래 세상이었고, 나의 어린 시절 전래동화가 그야말로 동화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때때로 '그것'과 상관없는 현실에 휘청거리긴 하는데 도대체 그때  얼마나 전래동화를 반복해서 읽은 것인지 알고 싶어 진다.  상당 부분 다 깨진 어릴 적 믿음 가운데  끈질기게 살아남아 여태껏 나를 괴롭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선함이 금은보화를 차지하는 것은 못 보더라도, 퇴사 전까지 나를 포함한 그 누구의 악함이 곤장 맞는 꼴은 꼭 보고 싶은데.  


 지나친 동심은 회사원으로서의 정신건강에 이토록 해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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