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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06. 2019

20대의 기록, 미니홈피



 돌이켜보면 나는 예전부터 끄적이는 것을 참 좋아했다.

책을 읽다가도, 노래를 듣다가 가사에 꽂힐 때도, 여행을 떠나서도, 작정한 이벤트를 벌여 사서 고생할 때도, 예상치 못한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도 어떤 형태로든 그때의 여운을 글로 남겼다. 특히 이십 대에는 미니홈피를 열심히 했었는데 문득 그때의 흔적이 궁금해져 본인 인증을 통해 아이디와 비번을 겨우 찾아내 추억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봤다.


역시 많은 기록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찍은 사진과 생각의 흐름대로 적어댄 짧은 호흡의 글들로 가득했다. 셀카 사진은 왜 그리 많은 건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지금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 지금과는 꽤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셀카의 장수도 충격적이었는데, 여기서 더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미니홈피 BGM 리스트에 있었다. 보유하고 있던 676곡 중, (그 어떤 연동 시스템이 있었던 건지) 내가 노래방에서 불렀던 노래 3곡이 들어 있었다. 이 와중에 다시 들어보니 못 들어줄 정도까 아니었기에 그래서 소장했나 보군 했는데, 특히 원더걸스의 tell me는 기대 이상으로 썩 잘 불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웃음)

 하지만 도저히 끝까지 들어줄 수는 없어서 중간에 노래를 끄고 그 시절 내가 찍어 올린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실제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못 놀아서 한 맺힌 사람처럼 날 뛰고 다닌 것이 사실이긴 한데 (이십 대 시절 사진에서) '나는 지금 너무 즐거워 죽겠다'라고 보여 주려는 어떤 강박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삼십 대는 이십 대를 마냥 귀엽게만 보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인 건지 과장된 표정과 부자연스러운 몸짓이 다소 거북해 사진 창을 닫아 버렸다.



 마지막으로 그때 쓴 글들을 읽어 볼 차례였다.

 분명 오글거리는 글이 많을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의외로 날카로운 글들이 많았다. 표현은 거칠었지만 그래서 더 꾸밈없는 나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때의 일기란 거의 반성문에 가까운 문장들로 점철돼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꿈꾸고 있었다.

 어설프게 아느니 화끈하게 몰랐던 그때가 더 나았던 것일까. 마침내 현실감을 획득하고 유연한 사고를 갖게 된 것이라고 지금의 나를 포장하기에는 오늘의 나는 너무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데, 26살에 쓴 일기 중에 '그 어떤 소설보다도 허구적인 삶'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그런 표현을 썼겠지만, 그때로부터 10년 뒤인 나의 오늘이 이럴 줄 알았다면 '허구'란 표현을 그리 쉽게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한 치 앞을 못 내다본 채로 나름의 이유를 담아 끄적이고 또  끄적인다.


보태기-사진은 어느 전시회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내 미니홈피에서 퍼왔다.

기억이 맞다면 작품명은 Non-thinker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작가의 기발한 표현력에 무릎을 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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