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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17. 2019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 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오늘까지 누적된 텔레비전 시청 시간 중 반만 다른 일을 했어도 내 인생이 조금, 아니 꽤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텔레비전을 진짜 많이 보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한 번 꽂힌 드라마는 방영시간에 맞춰서 보는 것도 모자라, (비디오로 녹화 뜨던 시절) 녹화를 떠서라도 반복적으로 보고 또 보고 했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에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삼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본방 사수하는 드라마가 반드시 한 편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챙겨보는 드라마가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게 좋아하던 드라마를 갑자기 왜 순식간에 끊게 되었을까 의문이 들었다가도 그 답은 늘 찾지 못했는데 며칠 전 그 까닭을 조금 찾은 것 같다.






 저번 주말, 모처럼 집에서 빈둥거리며 채널을 돌리다가 최근 시작한 드라마가 연달아 재방되길래 별 기대 없이 틀어놓았다. 보다 보니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이 정확히 내 또래라 대사들도 폭풍 공감되고 상황 설정이나 캐릭터들이 신선해서 몇 회분을 쭉 이어서 보게 되었다. 그러다 거의 끝날 때쯤 여자 주인공에게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고 남자 주인공이 짠하고 나타나더니 방영분 마지막 회가 끝이 나버렸다. 모처럼 볼만한 드라마가 나왔구나 좋아했다가, 이제 이 드라마를 더 이상 볼 일은 없겠구나 하는 씁쓸한 예견을 하며 텔레비전을 껐다.

 자기 일 열심히 하던 남녀 주인공들이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것까지는 심히 부러웠지만, 행방을 알린 적도 없는 여자 주인공을 (나이스 타이밍에) 발견하는 남자 주인공의 신공까지 참는 건 역시 웠다. 내 현실은 당황스러운 일 생길 때 (그거 받고 더  당황스러운 일이 추가되는 와중에도) 마냥  나 혼자인데 저것이 웬 말인가 싶었다.  
 



 내가 어떤 음식을 먹게 되거나, 좋아하게 될 줄 전혀 생각도 못했다가 나이 들면서 식성이 변해 가끔씩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드라마에 대한 변심(?)도 나이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식성의 변화와 그 맥락이 비슷한 것 같다.

 예전에 드라마를 볼 때는 현실과 철저히 상반되는 그 드라마틱한 요소 때문에 봤는데,  지금은 바로 그것 때문에 드라마 보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끄고 나면 내 현실이 유독 더 쓰디쓰게 느껴져  차라리 안보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게다가 드라마는 새드엔딩이든 해피엔딩이든 짧게는 60분, 길게는 두세 달이면 갈등에서 벗어나거나 제자리로 돌아가는 등 뭔가 마무리되는 맛이 있다. 한 때 드라마의 이런 완결성에 매료되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다만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자꾸 그것을 기대하고 그러다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드라마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끼는 일 역시 피하 되었다. (나의 갈등은 하나가 해결됐나 싶으면 다른 것이 이미 찾아와 완결 없는 to be continued니까 말이다)



 오늘은 월요일답게 지독히도 출근하기 싫었는데,

 어찌어찌 월요일분을 버티다 보니  나의 드라마 아니 나의 현실의 화수목금요일 분도 (언제나 그렇듯) 훅 끝날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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