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다녀온 지 딱 1년이 되었다. 1년 전, 혼자만의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했던 시기였고, 친한 사람 중 러시아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서 혼자 다녀왔다.
여행의 기억을 돌이켜봤을 때 어떤 장소는 내가 어떻게 거기를 혼자 다녀왔지,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하는 곳이 있는데 지금 이 순간 러시아가 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꽤 많은 날을 혼자 떠났어도 한 번도 뭐라고 하신 적 없던 아빠조차 (러시아에 혼자 간다 했을 때는) 처음으로 우려를 표하셨다. 사람이 사는 곳은 그 어느 곳도 백 프로 안전할 수 없고, 그 어느 곳도 백 프로 위험하지 않다. 이렇게 호기롭게 스스로 다독였지만, 생전 들지 않던 여행자 보험까지 가입하고 다녀온 곳이 러시아였다.
결론적으로 러시아는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한 가지 점을 빼놓고 몽땅 다 내 스타일인 나라였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매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고 있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랄까.
발레 공연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러시아에 왔으니) 일단 볼쇼이 극장에서 발레 공연을 보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 어떤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정말 오랜 시간 공들여 어렵게 예약하고 갔는데, 그때 뭐가 씌었던 건지 막상 가서 본 건 발레가 아닌 오페라 공연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나마 익숙한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오페라라 즐겁게 관람했다. 겉으로는 굉장히 투박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평일 저녁에 극장 전 석이 매진될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는 러시아 국민들이 더 궁금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모스크바에 오기 전 맛집 검색 리스트에 ‘고려’라는 식당이 있어서 참 의아했었는데 그곳은 바로 북한 식당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게 되면 식도락과는 거리가 멀어지기도 하고, 유독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아 (의기소침해져) 호텔 조식 이후 쫄쫄이 굶고 있던 때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호텔과 다소 거리가 있는데도 북한 식당 고려를 찾아가 무려 세 개의 메뉴를 시켰다.
인생 첫 평양냉면을 여기서 먹었고, 조국의 맛인 온반을 먹다가 눈물이 날 뻔했고, 김치를 먹을 때는 웃음이 났다. 무엇보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 그 누구 하고라도 말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는데 낯선 땅에서 내 나라말을 내뱉으니 정말 감개무량했다.
단돈 7천 원에
모네, 르누아르, 샤갈, 피카소, 고흐, 고갱, 세잔 등의 그림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 러시아에서는 가능하다.
러시아에 산다면 아마 나는 주말마다 여기서 온종일 앉아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의 시간은 모스크바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길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도착했는데, 헤매는 길조차 예쁜 동네에 그 미술관이 있었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서나, 미술관 안에서나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평소와 다르게)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스크바의 마지막 날 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만의 가요 플레이리스트에 의지하여 거리를 쏘다니는 것으로 떠나는 아쉬움을 달랬다. 향후 몇 달간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 어떤 한계 없이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면서 돌아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인적이 드물어져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역을 찾고 있을 때였다. 아무한테나 말을 잘 걸게 생긴 (대학생 정도로 돼 보이는) 러시아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니 하오.
정색하며 내가 순식간에 내뱉은 말은 이것이었다.
-I am not Japanese.
그 남자애가 옆에 있는 친구와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졸지에 중국말과 일본말과 영어를 모르는 동양인이 되어 있었다. 다시 뛰어가서 고쳐 말하기엔 이미 늦었다. 게다가 모스크바의 어둠도 너무 무서웠다.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생각했다. 아마 너무 오랜 시간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한 부작용이었던 것 같다.
비록 끝까지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스크바에서 모든 장소와 모든 기억은
‘하라쇼’ (러시아어로 ‘좋아’라는 뜻)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