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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l 07. 2019

어쩌다 두 시간, 고모의 조카 돌봄


 주말에 시간이 나면 일부러라도 조카를 보러 간다. 미혼의 고모에게 첫 조카이자 유일한 조카의 파워란 상상 그 이상이기에 안 보면 많이 보고 싶다.

요즘 둘째의 출산이 코 앞으로 다가온 올케는 몸이 점점 무거워져 하루하루 힘에 부치고 있다. 반면, 조카의 에너지는 점점 극에 달하여 이 더위에 자꾸 밖에 나가자고 올케를 달달 볶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조카바보병을 앓고 있는 내가 만삭인 올케를 위해 잠시 조카를 맡아주기로 하였다.  조카를 단독으로 마크하는 건 처음이라 다소 긴장은 되었지만 야외활동이니까 오히려 괜찮을 것 같았다.





 요즘 한창 말문이 트인 조카에게  고모랑 뭐 하고 싶냐고 물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조카는 양을 보러 가자고 했다.

신기하게도 동생네 아파트 근처 공원 안에 작은 양 떼 목장이 있는데 그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차로 가면 가깝고, 아이랑 걷기에는 다소 먼 애매한 거리였다. 신나게 놀아줘서 조카의 진을 빼는 게 주목적이라 걸어가 보기로 하였다.


 양을 보러 가는 여정은 일단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처음으로 중단되었다.  조카는 주로 자기에게 가당치도 않는 레벨의 기구들만 시도하려고 했다. 위험해 보이는 것들은 철저하게 저지시켰지만 겁도 없이 일단 돌진하는 모습이 과연 내 조카로구나 속으로 엄청 웃었다. 아이들은 한 번 꽂히면 기본적으로 다섯 번 이상은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건지 똑같은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을 하고 나서야  양을 보러 가기 위한 여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못가 이번에는  풀밭에서 두 번째 멈춤이 있었다. 조카가 이번에는 양에게 줘야 한다며 풀을 뜯기 시작한 것이다. 조카가 뜯은 풀은 강아지풀이었는데 조카가 나에게 멍멍이 풀이라고 알려주었다. 풀의 이름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길바닥에 앉아 조카에게 감격의 물개 박수를 쳐줬다. (실제로 요즘 내 조카가 천재가 아닐까 자주 생각한다) 나의 박수에 흥이 난 건지, 양을 위한 애정인 건지 조카는 주변 멍멍이 풀을 씨를 말릴 듯이 뜯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이 놈 하러 온다는 고전적인 뻥으로 겨우 중단시켜서 다시 양을 보러 가는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이후의 여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조카가 그토록 원하던 양보기 미션을 완료했다.




 

 조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약속이니까 지키기는 해야겠는데 차가운 음식이라 걱정돼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카는 아이니까 아이스크림을 당연히 좋아하는데 배탈 날까 봐 애엄마인 올케가 주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좀 고민하다가,  다섯 숟가락만 먹이고 뺏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선을 돌려서 아이스크림을 뺏긴 했는데 당연히 조카의 노여움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엄마랑 같이 먹자고 겨우 달래서 집으로 가는데 거의 다 와서 조카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집어던졌다. 갑자기 삐져서, 눈도 안 마주치더니 그 자리에서 꼼짝 않는 것이었다. 내 새끼면 혼도 내고 한 대 쥐어박겠는데 조카라 그러지는 못하겠고 (기억도 안 나는데) 뭐 어떻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집에 데리고 들어왔다. 언제 삐졌냐는 듯 다시 잘 웃길래 아이들이 삐지는 포인트와 웃는 포인트는 참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집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장장 두 시간 러닝타임의 긴 여정이었다.




 나는 어쩌다 한 번이라 그저 즐거운 두 시간이었는데, 이 땅 위의 모든 엄마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 날  나의 작전대로 조카가 딥슬립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것을 확인할 새도 없이 내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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