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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l 08. 2019

떠나야 사는 여자



알람 없이 아침 5시에 눈을 뜬 지 한 달이 넘었다.

오늘은 심지어 월요일인데도 아침 4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어떤 시험이 코앞에 있다거나, 중요한 일이 닥친 것도  아닌데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빡 들어가 있는 상태다.  

  회사에 가면 짬으로부터 온 미천한 지식과 잔기술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맡은 일을 꾸역꾸역 해낸다. 일하는 동안 사실상 저것 외에 써먹는 것이 없는데도, 퇴근해서 돌아오면 텅텅 비어있는 나를 본다.

몇몇의 다른 직원들, 그리고 바로 나.  과연 이게 맞는 건가 생각하는 것만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했나 보다.  진짜를 모조리 쏟아붓고 난 뒤에 오는 기분 좋은 공허함이 아니라 그냥 그야말로 공허함이다.

 그나마 예전과 크게 달라진 건, 퇴근하고 아무 생각 없이 tv에 시선을 꽂으며 시간 죽이는 건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리가 띵한 정신 상태지만 뭐라도 읽고 뭐라도 쓴다.  

  불안이 내 영혼을 잠식한 게 아니라  움직이게는 하고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방향성이 완벽하지 않아 순간순간 까칠한 예민함이 삐져나온다.

( 나만 느낀 건 아니었구나. 미안하다 후배야)

 친한 회사 후배가 어느 날은 대화 중간에

 대리님, 이제는 여행 안 가세요? 하고 훅 물어왔다.

 아마도 후배는 한 동안 내가 여행을 가지 않아, 독기가 빵빵하게 차올랐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내 증상이 여행 못 간 것 때문에 온 건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올 10월에 런던과 아일랜드를 가긴 한다.

늦은 여름휴가로 1년 전부터 친한 동생과 계획한 여행이다. 비행기표 끊어 놓은 거 빼놓고는 준비한 게 없어서 저번 주에 그 동생을 만나 숙소를 상의하고 예약을 마쳤다.




 작년, 이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둘이 여행자금을 모은다는 명목으로 한 시중은행의  BTS적금을 들었다. 멤버생일에 돈을 입금하면 우대 이율이 적용된다는 상품이었는데, (BTS의 생일 기억은커녕) 현실은 항상 오늘이 며칠이더라 하는 판국이라 우대는 못 받았다. 1년짜리 적금이었는데 동생이 자기도 몰랐다며  그 적금이 벌써 이번 달 만기라고 말해 주었다. 식상하지만 세월의 빠름이 새삼 무서웠다.  

 여행 장소가 정해지면 그 장소와 관련한 책은 읽고 가는 편이라 도서관에서 런던과 아일랜드에 대한 책을 잔뜩 빌려왔다.

 혼자 이것저것 바빠 아직 펼쳐보진 못했는데,  반드시 밴드 공연을 하는 힙한 펍을 찾아서 맥주를 마실 생각을 하고 있다. 최근에 슈퍼밴드라는 프로를 열심히 챙겨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상당수가 영국 밴드였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영국 맥주 오지게 마시면서 아티스틱한 밴드 음악에 흥을 실을 상상을 하니, 입가에 미소가 실실 새고 띵했던 머리가 조금씩 돌아간다.  

좀 더 나를 조이고, 박차를 가할 힘이 생긴다.

후배 녀석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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